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주식과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등 상장지수상품(Exchange Trade Product·ETP)에 불똥이 튀고 있다.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는 ETN과 러시아 증시를 추종하는 ETF의 기초지수가 '제로(0)'로 나타나면서 상장폐지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한국거래소는 우선적으로 이들 상품의 매매거래를 정지했다. 향후 자산가치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실제 상장폐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투자금 전액에 달하는 금액을 잃게 될 전망이다.
지표가치 상실한 ETF·ETN 일단 멈춤
한국거래소는 지난 8일 '대신 인버스 2X 니켈선물 ETN(H)'를 거래정지한다고 공시했다. 거래소는 "해당 ETN의 기초지수 종가가 0이 된 사실을 확인하고 투자자 보호 및 시장관리 사유로 거래를 정지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인버스 2X 니켈선물 ETN(H)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니켈 선물 가격이 하락할 때 하락률의 2배의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산출해 발표하는 'S&P GSCI Nickel 2X Inverse TR'지수를 기초지수로 하고 있다.
문제는 니켈 선물가격이 급등하면서 발생했다. 지난 7일 니켈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66.25% 상승했다. 니켈 가격 상승에 따라 S&P GSCI Nickel 2X Inverse TR지수가 하락해 지수 값이 '0'이 됐다.
이에 ETN의 1증권당 실질가치인 일일 지표가치(IV)도 0으로 떨어졌다. 향후 지수 값이 오르더라도 일일 기초지수 변화율을 곱해 지표가치를 계산하는 상품 특성상 0원에서 더 오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4일에는 러시아 증시에 투자하는 'KINDEX 러시아 MSCI(합성) ETF'도 거래정지 됐다. 거래소는 "투자자가 적정 순자산가치(NAV)를 참고해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해 투자자보호 및 시장안정을 위해 매매거래를 정지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ETF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산출하는 'MSCI Russia 25% Capped Index'지수를 추종한다. 그러나 지난 3일 기초지수 산출기관인 MSCI가 러시아 주식에 대해 0.00001 가격을 적용하면서 ETF의 장중 순자산가치(iNAV)도 0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 지난 10일 해당 ETF의 장마감 순자산가치는 0.03원으로 거래정지 전 종가인 1만70원과의 괴리율이 3356만6566.67%로 나타났다.
상장폐지 없이 부활 어려울 듯
두 상품 모두 거래정지 상태에 놓여 있고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자산가치가 이전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서다. 거래소에서는 판단을 보류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상장폐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니켈 인버스 2X ETN은 지수 산출기관인 S&P의 지수 변동사항 등 추가적으로 확인할 사항이 있어 아직 상장폐지 결정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폐지 가능성은 큰 상황으로 발행사와 협의한 뒤 이번주 내로 결정해서 안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ETF의 상장폐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금융제재 등 대외변수와 지수 산출기관의 산출 가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가 진행중인데다 해외 러시아 ETF도 거래가 정지된 상황"이라며 "MSCI에서 산출하는 러시아 지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에서는 아직 확실하게 상장폐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MSCI가 러시아 증권을 포함한 지수를 회복시킨다면 순자산가치 값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회복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고 지수 가격이 돌아오더라도 ETF의 순자산가치가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해당 ETF는 현물을 보유하는 일반적인 ETF와 다른 합성 ETF로 실물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시장조성자(LP)가 보유한 헤지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면 가격 회복이 쉽지 않다.
향후 상장폐지가 결정될 경우 투자자들의 투자 금액이 대부분 손실될 수 있다. 상장폐지시 현재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환급되는데 거래가 정지된 상황에서 매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환급 시점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투자자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거래소의 발표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환급되는 금액을 알 수 있을텐데 현재 자산가치를 보면 대부분의 투자금액을 손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