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2일 근로자가 퇴직연금 상품 사전 지정을 의무화하는 디폴트옵션 제도가 시행되는 가운데 관련 가이드라인이 이제야 모습을 공개했다.
예상보다 늦어진 가이드라인에 금융투자회사들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당장 디폴트옵션으로 판매 가능한 상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제도 시행은 연말에 가능할 전망이다.
이제야 베일 벗은 가이드라인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은행, 보험, 증권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디폴트옵션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고용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그리고 은행·보험·증권 등 업권별 협회가 논의를 거쳐 만들었다.
69페이지로 구성된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7월12일부터 8월31일까지 사업자들과 사전협의를 거쳐 요건을 갖춘 상품에 한해 9월 기초심의와 본심의를 진행한다. 심의 결과는 10월 말 일괄 통보할 예정이다. 대형사와 중소형사간 형평성을 위한 고려한 조치다.
심의위원장은 고용부 차관이 맡는다. 위원은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 등 정부위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승인 상품 개수는 판매사별로 최소 7개에서 최대 10개로 한정했다. 위험등급별로 상품을 구성해 심사를 받아야 한다. 펀드 유형은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SOC) 펀드 4종이 가능하며 펀드로만 구성할 시에는 TDF 혹은 밸런스펀드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금투업계, 늑장 가이드라인에 불만
증권업계에서는 가이드라인이 예상보다 늦게 마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폴트옵션 제도는 지난해 12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이 국회를 통과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에 금융투자회사들은 경쟁적으로 TDF나 밸런스펀드 등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등 준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의 윤곽이 뒤늦게 잡히면서 상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 수립에 애를 먹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A 증권사 관계자는 "법 시행 몇 개월 전에는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현장에 혼란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5월에는 내용을 받을 수 있을줄 알았다"며 "그런데 일정이 여태 밀리더니 이제서야 받았다"고 전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승인을 받더라도 각사별로 전산시스템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며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 당시에도 가이드라인이 뒤늦게 나와 업무 적용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C 증권사 관계자는 "연금 가입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적격 상품에 관한 사안은 제도의 정수가 될 수 있다"며 "때문에 당국이 기준선을 정하는 데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결국 오는 10월 적격 상품 여부를 가리는 결과가 나온 후 이르면 연말부터 상품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상품을 만들어 판매사들에 제공하는 자산운용사들 사이에서는 관련 가이드라인이 더욱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D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편입 가능한 상품에 대해 언급이 됐을 뿐이라 적격 상품에 대한 내용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관련 부처에서는 1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 만큼 법 시행에는 차질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시행령이 확정되기 전에 미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 혼란을 자초할 수 있어 통과 시기를 맞춰 배포했다"고 전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상품이 정해지면 기업들은 규약을 만들고 노조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절차가 굉장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시행일부터 진행되기엔 무리가 있어 유예기간을 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