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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 시대]④'아직 갈 길 멀었다'...업계·당국 '동상이몽'

  • 2022.07.22(금) 10:44

원리금 보장형 포함 논쟁 '재발'
업계 "사업자 운용재량 확대해야"
당국 "제도 핵심은 간결성"

금융투자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됐다. 시장에선 디폴트옵션이 퇴직연금의 성과 개선과 더불어 주식시장의 불안정한 수급 상황을 타개해 줄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반면 일각에선 퇴직연금사업자가 디폴트옵션 상품을 계열사 위주로 밀어주면서 제도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디폴트옵션을 둘러싼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짚어보고 향후 업계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은 모두의 기대처럼 평균 수익률 1~2%에 불과한 퇴직연금 시장 판도를 바꿔줄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일단 수익률 개선이라는 총론에는 금융투자업계와 당국의 입장이 같다. 그러나 제도 보완 필요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금투업계는 다양한 상품 라인업을 구축하기 위한 요구사항을 쏟아내고 있는 반면 당국에서는 자칫 투자자들 사이에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에 응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1년의 유예기간이 있는 만큼 '디테일'을 다듬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원리금 보장형' 논쟁 현재 진행 중

지난 12일부터 시행된 우리나라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미리 정해둔 상품으로 연금을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는 상품은 퇴직연금사업자가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개정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을 살펴보면 디폴트옵션 편입 가능상품에는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펀드(SOC) 등 대표적인 연금 상품들과 함께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됐다.

금투업계는 원리금 보장상품 쏠림 현상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한다. 이에 제도 시행 전 원리금 보장형을 디폴트옵션에 포함할지를 두고 업권간 대립이 팽팽했다.

은행과 보험사들은 투자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원리금 보장상품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수익률 개선이 목적인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의 갈등은 그 폭이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권까지 확대됐다. 결국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측 입장을 받아들여 원리금 보장상품을 넣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 제도 시행 이후에도 원리금 보장상품을 제외해야 한다는 금투업계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사전운용 지시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 없어 근로자들이 원리금 보장상품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최근 '퇴직연금 시장 변화에 따른 금융투자업계의 대응 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국금융공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선 금투업계와 당국의 입장 차가 분명히 드러났다.

오무영 금융투자협회 상무는 심포지엄에서 "아직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 심사와 라인업 구성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시장에선 원리금 보장상품에 쏠리는 현상이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디폴트옵션은 자동 운용이 아니라 선택형으로 운영된다"며 "5~6개 상품중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처럼 원리금 보장상품에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넣는 조건으로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다"며 "일단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품 제외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원론적인 입장이다. 박종각 금감원 연금감독실장은 "디폴트옵션 시행 이후 원리금 보장상품에 치우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가입자의 무관심 때문"이라며 "퇴직금을 잠시 보관하는 수단으로 보는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한국금융공학회가 금융투자업계와 '퇴직연금 시장의 변화에 따른 금융투자업계의 대응방안 모색'을 주제로 산학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백지현 기자 jihyun100@

업계 "재량 확대해야" vs 당국 "현 제도로 충분"

금투업계의 또 다른 요구사항은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사업자들의 운용재량을 확대해달라는 것이다. 현 제도상 사업자는 최대 10개의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을 꾸릴 수 있으며 하나의 상품은 최대 3개의 상품으로 구성하도록 권고된다.

오무영 상무는 "사업자별로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는 상품이 최소 7개에서 최대 10개밖에 되지 않아 차별화가 쉽지 않고 다양한 니즈를 감안하기도 어렵다"며 "가입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디폴트옵션 상품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혁 KB증권 연금사업본부 상무는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업권을 찾는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다른데, (현 제도에선) 모든 업권이 똑같은 상품 라인업을 갖게 될 것"이라며 "업권 특성에 맞게 상품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은 이에 대해 거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디폴트옵션 가입자 특성상 투자전략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 만큼 포트폴리오와 구성 상품 숫자를 무한정 확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종목을 3개 넣는 것이 아니라 펀드 상품을 3개씩 넣는 것"이라며 "그 안에서도 얼마든 자산배분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숫자를 제한한 건 상품을 신중하게 편입하라는 취지도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도 "제도의 핵심은 간결성에 있다"며 "포트폴리오 구성상품을 늘린다는 건 결국 같은 유형의 상품을 넣겠다는 것인데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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