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대외 상황에 국내 증시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태조이방원(태양광·조선·2차전지·방산·원자력)만큼은 뜨거웠다. 지난달 미국의 강력한 긴축 시사와 이로 인한 고환율에도 이들 종목은 평균 수익률이 20%에 육박한 게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이 열기를 이을 포스트 주자 찾기에 한창이다. 증시는 늘 사이클을 탄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특히 태조이방원은 국제 정세와 세계 주요국의 정책적 수혜를 입은 만큼, 앞으로의 헤게모니에 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얗게 불태웠다' 한달 수익률 20%, 이제 끝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태조이방원 대표 종목들의 지난 한달 평균 수익률은 19.84%에 달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0.80% 상승한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유달리 큰 오름폭이다.
태조이방원에 이목이 쏠리는 건 그간 증시에서 숱하게 나타났던 테마주와는 성격이 조금 달라서이기도 하다. 실체가 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주가가 뛴 게 아니라, 2차전지를 비롯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유망 업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베팅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업종은 경기둔화 우려 속에서도 국제 정세와 각국의 정책을 등에 업고 상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프렌드쇼어링'(동맹국 간 공급망 구축)이 대두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헤게모니란 언제든지 재편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이는 언젠간 사그라들 태조이방원에 대비해 시장이 다음 주도주 찾기에 한창인 배경이기도 하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 각국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시장 의존도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며 "'태조이방원' 현상도 그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호랑이가 없는 곳에선 여우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상례"라며 "그간 삼성전자 등 주요 인덱스 구성 상위 종목 및 업종의 부진은 '태조이방원' 종목군이 상대적으로 강세일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정책 모멘텀과 인플레이션 리스크 분산 가능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옥석가리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제조업 역량 부각 산업군 기회…동수서산에 5G도 주목
시장 전문가들은 '포스트 태조이방원' 역시 향후 국제 정세와 헤게모니에서 우위를 점한 국가, 그리고 그 국가가 주도하는 정책에서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둔화 우려는 커지고 있지만 정책 수혜 등으로 수요 증가가 기대되는 산업군에서라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신냉전과 프렌드쇼어링 체제에서 한국의 제조업 역량이 부각되는 산업이 시장에서 재평가될 것"이라며 "유럽에서는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가 제조업 비중이 높은데 독일에서는 자동차, 화학, 기계, 헬스케어 산업, 이탈리아는 기계, 소재 산업 등에서 수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수혜 업종도 여기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내달 3연임을 앞둔 시진핑 주석을 필두로 펼쳐질 중국의 재정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새 임기 첫해부터 성과를 내기 위한 각종 정책이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에서다. 여기에 최근 중국에서 부동산 경기둔화 속도가 빨라지고, 미국의 제재 강도까지 세지면서 이들에 대응할 정책의 필요성 또한 높아졌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태조이방원'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을 것이므로 이제는 중국이 정책을 본격화할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며 "시진핑이 내달 새 임기를 시작하면서 미국의 첨단기술 분야 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동수서산을 본격화해 증시 주도주를 바꿀 것"이라고 판단했다.
동수서산에서 '수'는 데이터를, '산'은 컴퓨팅 연산을 뜻한다. 경제 수준이 높은 중국 동부에서 발생한 테이터를 서쪽으로 옮겨 처리하도록 디지털 인프라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동수서산이다. 이 때문에 5G(5세대 이동통신)가 다음 주자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하 연구원은 "중국이 정책을 본격화하는 시점부터는 금융시장의 관점도 바뀔 것"이라며 "결국 5G 산업이 동수서산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