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0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을 부른 '라임 사태'가 다시 증권가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이 최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중징계를 확정하는 등 라임 펀드 판매회사 최고경영자(CEO) 제재에 속도를 내면서다.
증권사들은 정권 교체 이후 당국의 각종 규제 완화 스탠스를 토대로 제재 수위 경감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왔다. 그러나 이런 예상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대한 징계로 깨지면서 금융투자업계에선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년8개월 멈췄던 논의 속전속결…빨라지는 '라임' 시계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금융위원회는 라임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우리은행의 불완전판매 등 위법을 인정하고, 당시 은행장이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 '문책경고' 상당의 조치를 결정했다. 우리은행은 앞서 2018~2019년 3577억원 규모의 라임펀드를 팔았다. 판매 규모는 은행 중에서 가장 많다.
손 회장이 받은 문책경고는 향후 3년간 금융권 신규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내년 3월까지인 지주 회장 임기는 채울 수 있지만 연임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만 손 회장이 파생결합펀드(DLF) 제재 때처럼 징계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징계가 갑작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감독원이 작년 4월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해 손 회장에 중징계를 확정하고 금융위로 공을 넘긴 이후 1년8개월 간 멈춰있던 논의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욱이 앞서 DLF 사태와 관련해 사법부는 1·2심 모두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라임 사태에 따른 CEO 중징계 근거도 약해졌다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특히 그새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고 금융위와 금감원 등 금융당국의 두 수장이 차례대로 바뀌면서 금융정책은 물론 감독·제재 기조에도 '완화'의 조짐이 일었다. 이에 증권가에서도 라임은 물론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서도 CEO 제재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근거 있는' 기대가 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 의결로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증권사 CEO들에 대한 당국의 최종 제재 수위도 이번 중징계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현직 CEO들, 여전히 당국 '테이블'에
물론 손 회장에 대한 이번 징계를 정치적 외압으로 인식하는 시선도 적잖다. 우리금융지주는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바로 내달 연다. 이는 최근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의 자진 사임과도 '오버랩'되며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또한 손 회장의 경우 부당권유 등 불완전판매에 따른 중징계이지만, 증권사 CEO들에 대한 금감원 제재는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문책성 조치 성격이 짙다.
문제는 당국이 그간 미뤄뒀던 라임 사태에 대한 심의 안건을 다시 테이블에 올리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분위기처럼 당국이 징계 일변도로 갈 경우 증권사 CEO들에 대해서도 중징계 가능성이 없진 않다. 특히 금융위원장의 최근 발언은 당국이 앞으로 사모펀드 관련 제재에 속도를 내겠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손 회장 제재와 관련해 "국회에서 관련 내용이 너무 지체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당국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정리할 건 연말까지 빠르게 하려는 차원"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라임 사태와 관련해 금융위 테이블에 올라 있는 증권사 CEO는 김형진 전 신한금융투자(현 신한투자증권)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현 금융투자협회장, 이상 '직무정지'), 박정림 KB증권 대표,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이상 '문책경고') 등이다. 옵티머스 사태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 중징계인 '문책경고' 처분을 내린 상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외압 논란이 거세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금감원에 이어 금융위까지 CEO 중징계에 동의했다는 사실"이라며 "라임·옵티머스 관련 (금융)회사들은 다시 대관 쪽에 바짝 힘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