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이하 코스닥글로벌) 관련 규정을 또다시 바꿨다. 코스닥글로벌 기업의 지배구조 수준을 평가하는 기관을 1개사에서 3개사로 늘린 것이다.
평가기관을 다양화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지만, 퇴출이 예정됐던 일부 기업의 잔류 가능성이 생겨나면서 퇴출을 면해주기 위한 개정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연거푸 지배구조 관련 기준을 완화하면서 기업의 퇴출이 무마된 바 있어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29일 코스닥시장 글로벌 기업의 지정 등에 관한 지침을 개정했다.
코스닥글로벌은 코스닥 기업 가운데 재무실적 및 기업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을 선별하기 위해 거래소가 2022년 만든 기업지정제도다. 익히 알려진 코스닥150과 다르게 시가총액뿐 아니라 경영투명성까지 우수한 기업을 선발하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 평가 지표를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코스닥글로벌이 다른 지수 또는 제도와 차별화한 점도 단연 지배구조다.
코스닥글로벌이 참고하는 지배구조 평가 기관은 2022년 제도 출범이후 줄곧 한국ESG연구원(KCGS) 1곳이었으나, 최근 지침 개정으로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가 새로운 평가기관으로 들어왔다.
평가 기관이 총 3곳으로 늘어나면서 코스닥글로벌의 지배구조 요건도 바뀌었다. 기존에는 KCGS의 지배구조 등급기준으로 C등급 이상을 받아야 코스닥글로벌 유지가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3개 평가기관 중 2개 평가기관에서 C등급을 받으면 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국거래소는 기업 지배구조 등급 평가의 안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등급평가 기관의 복수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거래소의 설명처럼 다수 기관이 평가하는 것이 공정성이 더 높을 수 있다. 다만 일부 기업의 코스닥글로벌 퇴출을 막기 위한 개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지침 개정이 없었다면 KCGS의 단일 평가에서 C등급 밑으로 평가받은 △덕산네오룩스(D) △동국제약(D) △솔브레인홀딩스(D) △파트론(D) △하나마이크론(D)은 정기심사일인 오는 14일 지배구조 평가에서 탈락해 코스닥글로벌 퇴출 수순을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코스닥글로벌의 지배구조 관련 지침 개정 이력을 확인해보면 퇴출 예정 기업이 잔류할 수 있도록 변경해왔다. 따라서 이번 지침 개정도 일부기업의 퇴출을 방어하고 제도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이란 지적에 힘이 실린다.
코스닥글로벌은 애초부터 기업 지배구조 등급에 '특례 요건'을 걸고 출범했다. 출범 첫해에는 기업 지배구조 평가 등급 요건에 미달하더라도, 향후 등급 상향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확약하면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는 특례요건을 만든 것이다.
실제 거래소가 2022년 코스닥글로벌을 처음 지정한 이후 한 달 뒤 발표된 KCGS 지배구조 등급 평가에선 20개 기업이 등급 요건에 미달했다. 사전에 특례요건을 만들지 않았다면 코스닥글로벌 출범 한 달 만에 대부분의 기업이 퇴출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범 다음 해인 2023년 9월 22일에는 아예 지배구조 등급 기준 자체를 완화했다. 기존에는 지배구조 평가 등급이 B등급 이상이어야 잔류할 수 있었으나, C등급만 받아도 된다고 바꾼 것이다.
이와 함께 수시 취소기준 항목도 삭제했다. 코스닥글로벌 심사기준에 미달하면 즉시 퇴출하도록 했던 요건을 빼고 정기심사일까지 기준에 미달한 기업이 퇴출되지 않도록 바꿨다.
이에따라 지난해 10월말 KCGS의 기업 지배구조 D등급 평가를 받은 덕산네오룩스, 동국제약, 솔브레인홀딩스, 파트론, 하나마이크론이 즉시 퇴출당하지 않고 현재까지 코스닥글로벌에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퇴출이 불가피했던 정기심사일을 한 달여 앞두고 거래소가 지난 4월말 또한번 지침을 바꿔 지배구조 평가기관을 3곳으로 늘리면서 잔류 기회가 다시 생겼다.
이미 등급을 발표한 KCGS 기준으론 퇴출에 해당하지만, 새로운 평가기관인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에서 C등급 이상을 받는다면 잔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거래소는 코스닥글로벌 정기 심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의 지배구조 평가 등급을 공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몇 년째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기업들을 보호해 주는 모습은 코스닥글로벌에 속한 다른 기업의 경영투명성 신뢰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엄격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코스닥 기업 특성을 고려해 등급 향상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