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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제도 칼질에 무거워진 증권사 책임…대형사 쏠림 심화되나

  • 2025.01.24(금) 07:30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 주관사 책임·역할 강조
락업 40% 미달시 1% 의무보유·사전취득분 보유의무 강화
IB업계 "수익성 확보 더 어려워질 것…대형사에만 유리"

금융당국이 기업공개(IPO) 제도에 다시 한번 메스를 들이댄 가운데 회사를 도와 IPO를 주관업무를 진행하는 증권사의 책임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당국은 '파두 사태' 이후부터 증권사들의 주관업무 관련 의무를 강화해왔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상장 전 취득한 주식의 보유에 관한 기준이 높아지고 의무보유확약을 일정 규모 이상 모으지 못하면 물량을 떠안아야하는 의무가 생겼다. 일각에선 IPO 주관시장이 대형사들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1일 서울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지속적인 자본시장 밸류업을 위한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사진=김보라 기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지난 21일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국내 상장사 숫자는 주요국과 비교해 빠르게 늘어난 반면, 기업가치의 평가 잣대인 시가총액과 주가지수는 미미한 성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당국이 상장 절차인 IPO와 상장폐지 관련 기준을 대폭 높인 것이다. ▷관련기사: 지난해 밸류업, 올해는 'IPO·상폐 개선' 내놓은 금융당국…국장 탈출 러시 막을까

금융투자업계에서 주목하는 건 IPO 제도개선 중에서도 주관사 역할이다. 개선안에 따르면 공모주 배정 기준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항목을 구체화하고, 기관들에 공모주를 배정할 때 적용하는 최대 가점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올렸다. 아울러 사전 수요예측 기간동안 보호예수를 건 특정 기관들에게 미리 공모주를 배정해주는 코너스톤투자자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러한 당국의 방안에 따라 증권사들은 내부 시스템과 규정을 다시 한번 손질해야 한다. 특히 코너스톤제도는 국내에서 한번도 시행한 적이 없는 만큼 내부에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나 계열사 특혜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증권사들이 직접적으로 부담으로 느끼는 건 주관사의 주식 보유 의무다. 앞으로 락업물량이 전체 공모주의 4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증권사는 공모물량 1%를 반드시 들고 있어야 한다. 이때 보유물량은 최대 30억원으로 제한되며 상장 후 6개월간 팔지 못한다. 또한 주관사가 공모기업 상장 전에 미리 사둔 주식에 대한 보유의무도 강화됐다. 코스닥 상장 기업의 주식을 6개월 내 취득했을 경우 적용하는 가격괴리율 기준을 50%에서 30%로 내리고, 최소 의무보유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파두 사태를 시발점으로 이미 한 차례 제도 정비를 겪은 증권사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코스닥 상장사 파두는 2023년 8월 기술특례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직후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전망치를 훨씬 밑도는 실적을 발표해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결국 회사와 당시 대표주관업무를 맡았던 NH투자증권은 금감원의 조사를 받았고 작년 말 검찰로 넘겨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주관업무 프로세스 전면 개선에 착수했고 기업실사와 공모가 산정 절차를 손봤다. 

당국이 앞으로도 주관업무에 대한 책임을 높여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IPO 주관업무에 이전보다 더 높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에 인력이나 투자비용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형사들은 효율성을 따져봤을 때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증권사 IB 임원은 "소형 증권사는 인력도 얼마 안 되는데 당국이 제시한 기준을 따라가려다보면 리스크 방지차원에서 법무법인에 자문도 받아야 하고 시스템도 개발해야 한다"며 "이미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대형사와 비교해 비용도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미확약 물량을 증권사가 떠안아야 하는 의무가 생기면서 비용 대비 돌아오는 수익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란 시각도 있다. 증권사는 자기자본으로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고유계정과 고객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계정이 나눠 관리한다. 그렇지만 성과급을 지급할 때는 사실상 고유계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감안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증권사 IB 임원은 "기업을 성공적으로 상장시켜 수수료를 10억원을 받았는데 의무보유확약을 많이 받지 못해 증권사가 떠안아야 할 물량이 15억원이라고 가정해보면 이것을 다 매각할 때까지 성과급은 유보된다"며 "2~3년간 고생하며 기업을 상장시켰어도 정작 수고비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성과급 체계가 인력관리와 연관이 깊은 만큼 IB업계 내 IPO 주관업무 기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규제 흐름 속 자금과 인력 규모가 큰 대형사들이 유리해질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A증권사 임원은 "규제나 비용대비 효용을 맞춰가며 돈을 벌기 어려워지니 참여하는 플레이어들도 줄어들 것"이라며 "해외처럼 대형 증권사 위주로 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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