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계열사를 동원한 순환출자 구조를 차단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된다. 최근 고려아연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든 것이 논란이 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이다.

19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가 금지되는 계열회사를 '국내' 회사로 한정하지 않고, '해외' 회사도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다.
이번 개정안은 최근 고려아연이 해외 계열사를 활용해 신규 순환출자를 구성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현행 법이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발의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월 호주 손자회사 썬메탈코퍼레이션(SMC)에 영풍정밀 및 최윤범 회장의 친인척이 보유한 영풍 지분 10.33%를 이전했다. 이를 통해 '고려아연→썬메탈홀딩스(SMH)→썬메탈코퍼레이션(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했다.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을 활용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려 한 것이다. ▷관련기사:최윤범, 한밤의 기습 반격…고려아연 임시주총 파행 예고(1월22일)
공정거래법은 2014년 개정을 통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형성을 금지했지만 해당 규정(제22조)은 국내 계열사 간 출자로 한정했다. 고려아연이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것은 이러한 법적 사각지대를 활용한 전략이다.
고려아연 이전에는 법적 공백이 있음에도 기업들이 빈틈을 활용하지 않았다. 공정거래법 제36조 탈법행위 금지 규제를 의식해 해외 계열회사를 이용한 순환출자 형성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개정안이 발의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해당 조항은 신규순환출자 금지 등 공정거래법 규정을 회피하려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즉, 법에서 금지하는 특정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우회하는 방식으로 동일한 효과를 내는 행위를 금지한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공정위가 고려아연 사례를 탈법행위로 판단하지 않을 경우 다른 기업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신규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이다.
앞서 고려아연이 해외계열사를 이용한 신규순환출자를 만든 이후, 영풍은 공정위에 이를 신고했다. 현재 공정위는 고려아연의 탈법행위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만약 공정위가 이를 탈법행위라 판단하지 않는다면, 다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신규 순환출자를 형성해도 막을 방법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 같은 점을 의식해 김남근 의원은 해외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 구성을 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남근 의원은 해당 법 제안 이유로 "2024년 기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49개의 해외 계열회사 총수는 7558개에 달한다"며 "공정위가 고려아연 사건을 탈법행위로 판단하지 않으면 많은 기업들이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신규 순환출자, 상호출자를 시도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출자 규제를 포함하지 못했던 배경에는 해외 계열사의 존재 및 출자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장애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2년부터 시행한 공시제도 강화로 이러한 장애물이 해소된 만큼 이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2년부터 총수 일가 및 특수관계인이 합산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해외 계열사의 주주현황과 국내 계열회사 출자 내역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공시를 통해 하이트진로가 일본 계열사(JINRO Inc.)를 이용해 2008년부터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만 이는 공정거래법상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이전에 형성된 구조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