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분쟁 분수령인 임시주주총회를 앞둔 저녁, 기습 반격을 가했다.
본인이 지배하는 영풍정밀 및 친인척이 보유한 ㈜영풍 지분을 해외계열사에 매각, 상호출자 구도를 만들어서 ㈜영풍의 고려아연 의결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앞서 법원이 집중투표제 도입을 전제로한 이사선임안건 상정을 막으면서, 주총에서의 패색이 짙어지자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려아연 지분 25.4%(의결권 기준 28.9%)를 가진 1대주주 ㈜영풍으로서는 자신들의 의결권 무력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최 회장 측은 해외계열사의 ㈜영풍 주식 취득은 상법에 따라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단했지만, 상법 해석에 논란이 있는데다 이번 지분거래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신규 순환출자까지 형성된 상황이다. 이에 법적 논란 소지가 다분해 결국 23일 임시주총은 ㈜영풍의 의결권 유효성을 놓고 격한 대립 속에 파국으로 치닫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은 최윤범 회장 일가 3명과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0.33%(19만226주)를 575억원에 장외거래로 취득했다. 이 내용은 전자공시 마감 시한이 임박한 오후 5시 58분 올라왔고, 고려아연 측도 오후 8시께 별도의 자료로 배포했다.
SMC는 영풍정밀로부터는 21일 종가(41만8000원)기준으로 지분을 취득했고, 최윤범 회장 친인척으로부터는 21일 종가를 기준으로 30% 할인된 가격에 인수했다. 고려아연 측은 이와 관련 "가격 측면에서 SMC가 큰 이익을 얻게 되는 반면, 최씨 일가는 매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상당수를 포기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상법(제369조 3항)에 따르면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총수의 10%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고려아연은 이 조항을 근거로 고려아연의 자회사(지분관계상 손자회사이나 상법 제342조의2 규정으로 자회사 분류) SMC가 ㈜영풍 지분 10% 이상을 취득했으므로,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25.42%) 의결권도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풍 주식을 사들인 SMC는 해외법인이자 유한회사란 점에서 고려아연의 상법 해석이 적절한지 논란이 있다.
고려아연이 SMC의 ㈜영풍 지분 취득을 알리자 MBK파트너스는 입장문을 내고 "SMC는 외국기업이며 유한회사(Pty Ltd.)임이 명확하므로 상호주 의결권 제한은 적용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이번 지분거래로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선메탈코퍼레이션(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된 것도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고려아연이 속한 대기업집단 영풍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신규 순환출자 금지 대상이다. 물론 공정거래법은 '국내 계열사'에 적용하는 것이어서 직접적인 법 위반은 아닐 수 있더라도, 법 취지를 정면으로 어기면서까지 강행한 무리수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최윤범 회장 측이 이런 카드를 꺼내든 것은 지난 21일 법원이 집중투표제 도입 조건부 이사선임 안건 상정을 금지한 여파로 MBK·영풍 측에 이사회 과반 지위를 넘겨줄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호주 의결권 제한카드를 꺼내면서 23일 오전 9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MBK·영풍은 "고려아연과 최윤범 회장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의결권 제한 시도에 대항해 잘못된 점을 주주총회에서 설명하고, 정당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MBK·영풍의 이러한 입장에도 주총 진행을 맡은 고려아연 측이 ㈜영풍의 의결권을 배제한 채 안건 표결을 강행한다면 절차적 적법성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 양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고려아연과 MBK·영풍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별도의 주총을 열어 안건을 처리한 후, 법원에 유효성 판단을 맡기는 상황까지 나타날 수 있다.
23일 임시주총 의장은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맡는다. 최윤범 회장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임시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수 상한(19명) 설정 △집행임원제 도입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발행주식 액면분할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등을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