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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홈플러스 전단채 변제계획에 소송카드 꺼내든 증권가

  • 2025.03.31(월) 17:18

전단채 사기발행 혐의로 홈플러스 대상 고소 진행
4000억 ABSTB 조기변제 계획발표 압박 수단
불완전판매 혐의 적용시 손배책임·제재위험
과거 LIG사태 당시 우투증권 기관경고 제재받아

홈플러스 카드 매입채무를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발행을 주관한 신영증권과 판매사들이 연대해 홈플러스와 그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결정했다. 홈플러스가 구체적인 변제 계획을 내놓지 않자 이를 압박하기 위한 목적이다. 일각에선 증권사들이 불완전판매 논란에 휩싸일 것이 예상되자 선제 대응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홈플러스 유동화전단채 피해자 비대위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정문 앞에서 홈플러스 유동화 전단채(ABSTB) 피해자 상거래채권 분류(인정)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신영 등 증권사, 홈플러스에 소송 제기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ABSTB 발행주관사인 신영증권을 비롯해 판매사 하나증권, 유진투자증권, 현대차증권은 홈플러스와 홈플러스 경영진을 상대로 이번 주 형사고소 진행을 검토 중이다. 일단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고소 대상에서 제외하는 쪽으로 갈피를 잡았다. 

증권사들은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신청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고 보고 사기 혐의를 의심하고 있다.

당초 법적 조치에 유보적 입장을 보이던 신영증권이 타사와 연대해 소송에 나선 건 홈플러스의 ABSTB 변제 계획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BSTB는 카드유동화 채무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유동화 상품이다. 홈플러스가 카드로 상품을 구매하면 카드사엔 나중에 받아야할 매출채권이 생긴다. 카드사는 이를 증권사에 넘기면서 돈을 받고, 증권사는 다시 유동화시켜 ABSTB로 발행한다. 홈플러스가 직접 발행한 것은 아니지만 ABSTB는 홈플러스의 자금줄 역할을 한 셈이다. 발행 주관을 맡은 증권사는 다른 증권사들에 물량을 넘겼고 이들의 리테일창구를 통해 개인과 법인 고객들에게 팔렸다. 

그러나 홈플러스가 지난 4일 갑작스레 기업회생 신청을 하면서 ABSTB는 손실 위기에 처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기 시작한 3월4일 기준으로 매입채무유동화 잔액은 4618억원에 달한다. 

투자자들의 요구에 홈플러스는 지난 20일 ABSTB의 상거래채권로 분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발행, 판매에 연루된 증권사들은 상거래채권 분류만으로는 조기 변제를 확정지을 수 없다며 구체적인 변제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상거래채권이 변제순위에서 후순위에 놓인 탓이다.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공익채권, 회생담보권, 회생채권 순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상거래채권과 금융채권 모두 회생채권에 해당한다. 법조계에 따르면 상거래채권이 일반 회생채권보다 더 높은 변제율을 적용받긴 하지만, 채무자는 이를 10년에 걸쳐 변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 ABSTB 투자자들은 2035년에나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신영증권은 입장문을 통해 "상거래 채권 취급은 조기 정상변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회생계획안을 작성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하며, △구체적인 변제 계획 및 기간 △해당 계획에 대한 모든 채권자들의 동의 △변제를 위한 상환재원 등을 포함한 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홈플러스가 6월 중순 회생계획안을 통해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자, 결국 증권사들은 소송 카드를 빼들었다. 소송에 참여하기로 한 익명의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 구제를 위해 여러 안을 검토하던 중 여러 회사가 협력해 대응하기로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회생계획안 발표까진 변제 여부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가급적 법원과 빨리 조율을 하도록 요구하는 취지"라며 "형사고소나 금융감독원 민원접수로 여론 압박이 높아지면 홈플러스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LIG사태 때도 불거진 불판이슈…'제재 대비용'?

일각에선 증권사들이 이번 소송으로 불완전판매 논란에 미리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에도 단기채 불완전판매 혐의로 증권사가 제재를 받은 사례가 있다. 지난 2010~2011년 LIG건설은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앞두고 열흘 전까지 수백억원의 기업어음(CP)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고, 증권사를 통해 이를 사들인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당시 판매사였던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은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고, 불완전판매 혐의로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당시 제재조치 내용을 살펴보면 금감원은 우리투자증권이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원리금 상환가능성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요인은 빼놓고 신규 수주활동·우량계열회사의 지원가능성 등 긍정적인 요소만 선별적으로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투자자들에게 금융투자상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그 결과, 우리투자증권은 중징계 조치인 '기관경고'와 2500만원의 과태료를 처분받았으며, 26명의 지점 직원들도 주의, 견책, 감봉 등 징계를 받았다. 

물론 투자자들이 우리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책임 소송에선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증권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반면, 대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금융투자상품 투자 경험이 많은 투자자라는 점에서 '설명의무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해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러한 판례에도 증권사들이 안심하기 어려운 건 과거와 달리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투자자 보호 의무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금소법은 금융사들이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 광고 금지 등 6대 판매 규제를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홈플러스 건 역시 상당한 손실이 예상되고 있어 증권사들이 불완전판매 책임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들이 불완전판매 혐의를 피해가려면 투자성향이 적합한 투자자에게 상품을 권유했는지, 상품의 위험요소를 제대로 설명했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

판매 절차에서 금소법 상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증권사들은 배상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증권사들이 이번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청구권을 미리 확보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제재 수위를 의식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통상 당국은 고객 피해 배상 등 수습 노력을 감안해 제재를 결정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소비자보호 규제가 두터워진 만큼 책임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비자 보호 조치를 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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