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자산운용사들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최근 상장지수펀드(ETF) 보수·마케팅 경쟁 과열이 된데 이어 가격 산출 오류 등 문제가 계속해서 적발되자 경고등을 켠 것이다. 시장 혼란을 야기하는 운용사에 대해선 점검에 착수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10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사 23곳의 최고경영자(CEO)를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일부 대형사를 중심으로 외형 확대를 위한 보수 인하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운용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펀드가격(NAV) 산정에서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투자자의 신뢰를 근본부터 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자산운용사들이 앞다퉈 주요상품 보수 인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미국 S&P500, 나스닥100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요상품의 보수를 0.0068%로 낮춘데 이어 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도 곧바로 동일 상품의 보수를 0.0062%로 내렸다. 뒤이어 KB자산운용과 한화자산운용, 하나자산운용 등도 인하를 발표했다. 이에 금감원은 특정 상품의 보수를 대폭 깎고 나머지 상품에서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더욱이 자체 SNS채널과 핀플루언서 광고에서 경쟁사를 저격하는 등 바이럴 마케팅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ETF 순자산가치(iNAV) 산출 오류가 2거래일 연속 발생하며 투자자 혼란이 가중됐다. 지난달 28일 펀드 사무관리회사인 한국펀드파트너스가 배당을 중복계산해 160여개의 ETF의 iNAV를 잘못 계산됐고 이에 따라 괴리율이 커졌다. 3월31일엔 데이터 벤더사 오류로 실시간 ETF iNAV 산출 오류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운용사들이 업무를 위탁해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복되는 잡음에 금감원은 경고장을 날렸다. 이 원장은 "본연의 책무를 등한시하고 노이즈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운용사에 대해서는 펀드시장 신뢰보호를 위해 상품운용 및 관리체계 전반을 점검하겠다"며 "운용사 자체적으로도 업무 원칙과 내부 규율을 재정립해 투자자의 믿음에 부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운용사들의 형식적인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임직원의 사익추구나 계열사에 치우친 의사결정 등 투자자 최우선 원칙을 위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의결권 행사 모범 회사와 미흡 회사 리스트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 원장은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소신발언을 했다. 상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재계 반발이 거세지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원장은 "소모적 논쟁으로 낭비될 여유가 우리 자본시장에는 없다"며 "당리당략, 정치적 이해관계 등은 접어두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산운용업계는 이날 △펀드가입 절차간소화 △외화표시 ETF 상장 허용 △장기적립식·채권형 상품에 대한 세제상 혜택 부여 등 정책적 지원을 건의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운용 효율성 제고, 과도한 마케팅 자제 등 자정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