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추천권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던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이번에는 자산운용사들을 향해 의결권 행사를 넘어 투자대상 기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주행동주의 강화에 보조를 맞춰 주주제안을 촉구하는 모습이다.
이 원장은 아울러 펀드 설계 단계에서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시 해야 한다며 '소비자 보호' 기조를 재차 강조하고 상품 베끼기 경쟁 자제를 당부했다.
"투자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의견 제시하라"
이찬진 원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운용사 20개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열고 "의결권 행사는 기업가치 제고와 거버넌스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필요 시 투자대상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제시를 통해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운용사가 자본시장의 파수꾼으로서 책무를 다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최근 금융지주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이어, 자산운용사들이 수탁사로서 의결권 행사뿐 아니라 주주제안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지주 CEO 간담회에서 사외이사 후보 추천 방식으로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을 예시로 들었는데, 특정 기관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금융지주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한 국민연금의 주주추천권 활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감원은 투자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코드 개정과 이행실태 점검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손질과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 도입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비 새는 집 들보 썩는다" 펀드 설계 투자자 보호원칙 강조
아울러 이 원장은 펀드 설계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에 둘 것을 당부했다. 취임 직후 소비자보호를 강조해온 이 원장은 전액 손실이 확정된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벨기에펀드 불완전판매 의혹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검사를 지시했다. 금감원은 또 투자자가 투자위험을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도 착수했다.
이 원장은 "투자자 최선 이익 원칙이 운용업계에 있어 아주 기본이 되는 대원칙임에도 금융당국이 나서서 반복적으로 이를 강조해야만 하는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며 "비 새는 집 들보는 결국 썩듯이 수익 추구만을 우선하는 사업전략은 국민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CEO들에게 투자자 최우선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운용사 간 과열 경쟁과 장기투자상품의 분산투자 미흡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타깃데이트펀드(TDF) 운용비중이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TDF 상품이 주식 등 위험자산에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원장은 "단기 성과에 매몰된 나머지 상품 쏠림, 베끼기 등 과열 경쟁 양상이 나타나거나 장기상품인 TDF에서 분산투자 원칙이 준수되지 않는 일부 사례는 우려스러운 부분"이라며 "무분별한 경쟁과 고객 신뢰 훼손은 자산운용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림으로써 결국 소비자가 시장을 떠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테마성 상품 쏠림과 과열 경쟁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퇴직연금감독규정 시행세칙을 손질해 분산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적격TDF 요건을 마련한다. 또한 공모펀드 보수 체계 전반도 정비할 예정이다.
부동산에 집중된 자금을 산업과 혁신 분야로 유도하는 생산적 금융 전환에 대한 운용사들의 역할도 주문했다. 전문적인 평가 인프라를 구축해 K-벤처 생태계 조성에 적극 기여해 달라는 취지다.
이날 운용업계에서는 다양한 건의 사항이 제기됐다. 참석한 CEO들은 장기 투자 인센티브 대상에 펀드를 포함하고, 펀드 투자자에 대해 배당 분리과세를 적용할 수 있도록 세제 보완을 요청했다. 아울러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등 가상자산 상품 출시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