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T맵택시도 괜찮아요. 카카오택시보다…"
카카오와 택시 업계가 카풀 서비스를 놓고 한창 대립하던 시기인 지난달,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기자에게 기사님이 불쑥 꺼낸 말입니다. SK텔레콤이 만든 괜찮은 앱이 있으니 써보라는 일종의 바이럴(입소문) 마케팅이었습니다.
이제껏 콜택시나 카카오택시(카카오T) 정도를 사용했으나 T맵택시는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유명한 T맵이 택시콜로 영역을 확장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카카오택시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져 안착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기 때문인데요.
무엇보다 택시 업계와 카카오가 날선 신경전을 벌이는 시기에 기사님이 친절하게 카카오택시의 경쟁 서비스인 T맵을 홍보하는 상황이 흥미로웠습니다. 확실히 택시 업계와 카카오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들의 변심 때문인지 T맵택시 이용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가입 기사수는 10만2000명. 지난 5개월간 3배 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 기간 평균 배차성공률은 17%에서 61%로 확대됐습니다. 호출을 10번 하면 예전엔 2번 남짓 성공했으나 최근엔 6번으로 성공률이 껑충 높아졌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놓고 SK텔레콤은 택시 기사들이 적극적으로 T맵택시에 가입함으로써 배차 성공률이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돌풍'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오는 2020년 말까지 실사용자 500만명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택시 업계가 반길만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내놓으면서 카카오택시를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계획입니다.
이에 대해 카카오측은 동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카카오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카카오택시 평균 호출은 120만건의 압도적 수치를 유지하고 있고 눈에 띌 만큼 줄어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카카오택시 가입 기사는 T맵택시 보다 두배 이상 많은 23만명. 전국 기사(27만명)의 83%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SK텔레콤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택시 업계와 첨예한 갈등을 겪는 사이에 SK텔레콤이 T맵택시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울러 SK텔레콤과 모빌리티 등 신사업을 놓고 부딪혀온 과거 사례들도 새삼 떠오를 겁니다.
실제로 카카오와 SK텔레콤은 유독 악연을 맺어왔습니다. 불편한 관계가 시작된 것은 모바일 상품권 사업으로 충돌했던 지난 2014년 부터였습니다. 당시 SK텔레콤의 자회사이자 T맵택시 운영을 맡은 SK플래닛은 카카오톡에 빵이나 커피 등의 상품 교환권을 공급했는데요. 카카오톡 메신저로 모바일 상품권 시장을 휘어잡은 카카오가 SK플래닛을 포함한 공급업체들과 계약이 만료되자 사업을 직접 운영한다고 선언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자 SK플래닛은 카카오가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이른바 '갑(甲)' 행세를 벌인 것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아울러 카카오가 불공정행위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두 회사가 또 다시 맞붙은 것은 2015년에 불거진 내비게이션 표절 논란입니다. 당시 SK플래닛은 카카오가 인수한 내비게이션앱 '김기사' 운영업체 록앤올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금의 카카오내비의 원형이라 할 김기사가 T맵의 전자지도 정보를 무단사용했다며 법정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
몇차례 분쟁을 거치면서 카카오와 SK텔레콤은 택시와 결제 등 신규 사업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맞수 관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택시에 이어 대리운전과 주차, 카풀 등 차세대 운송수단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고 있고요. 여기에 인공지능과 음성인식, 핀테크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5G 시대의 핵심 먹거리로 부상할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내비게이션과 택시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차량 주행이나 택시 승객의 행동과 관련한 실제 데이터를 많이 쌓아야 자율차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SK그룹 차원에서도 차량공유 서비스 쏘카나 '동남아의 우버'라 불리는 그랩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SK네트웍스는 최근 국내 렌트카 업계 3위 AJ렌트카 인수를 추진하는 등 모빌리티 신사업을 위해 역량을 한데 모으는 모습입니다.
카카오와 SK텔레콤 두 회사의 서비스 방향이 비슷한 이상 앞으로도 사사건건 붙으면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그동안 '갑을' 혹은 '라이벌' 관계 등 분쟁과 경쟁을 오가며 티격태격 싸웠던 두 회사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관심이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