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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부모 입장에서 '게임 과몰입' 보기

  • 2019.06.10(월) 17:43

WHO 결정에 게임업계 연일 들썩
사회적 인식 개선 급선무

1990년대 말 '게임하고 돈버는' 프로게이머가 한국에 처음 등장했을 무렵 중학생이었다. 그땐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대유행이었다. 테란, 프로토스, 저그 등 3가지 종족 중 하나를 골라 전략을 다투는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할 줄 모르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PC방에서 즐겼다. 용돈이 한정돼 있으니 1시간 정도만 하고 학원에 갔다.

부모님이 잠들면 몰래 컴퓨터를 켜서 집에서도 했다. 요즘 같은 초고속인터넷이 아니라 모뎀으로 연결했기에 게임을 하면 전화통화가 안 됐다. 한달쯤 지나 부모님께 들켰다. 전화 요금이 20만원 가까이 나온 것이다. 부모님은 컴퓨터 자체를 못하게 하려 마우스를 숨겨두기도 했으나, 단축키를 이용하면 키보드만으로도 작동시켜 리플레이를 보며 전략을 복습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게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친구 사이에선 상대가 없었다. 한명씩 이겨나가는 과정에서 나름 깨달음도 있었다. 공부에서 국·영·수가 중요하듯 게임도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것. 한계도 깨달았다. 어느 이벤트에 참여해 프로게이머 '쌈장' 이기석 선수와 맞붙었을 때였다. 프로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서울대 합격생의 말이 망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도 쉽지는 않았지만, 20년쯤 흘러 이제 나도 부모가 됐다. 6살짜리 아들은 게임을 즐길 수준은 아니고, 유튜브를 본다. 어느날 영유아 건강검진에 갔더니 의사가 "아이에게 유튜브를 보여주냐"고 묻고는 경고했다. "눈이 나빠질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대인관계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래들이 다 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애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어요. 유튜브를 모르고 커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모르고 중학생 시절을 관통했어도 왕따가 되진 않았을 것이고, 밤새 게임할 시간에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 유튜브는 아이와 소통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는 점이다. 요즘 아이와 나는 저녁에 시간나면 유튜브를 틀어놓고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노래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며 즐긴다. 나의 어린 시절 라디오나 TV 앞에서 재롱을 떨던 게 스마트폰 앞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옛날 나의 부모님께 스타크래프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의 앞날을 좀먹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더 정확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놀이문화 였을 것이다. 마우스만 빼앗으면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과몰입'을 새로운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게임 업계가 연일 들썩이고 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공식화되면 한국 콘텐츠 산업 성장의 원동력인 게임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정신 의학계 일각에서 '게임은 좋은 것이지만 치료가 필요한 중독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에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모든 세력 가운데 게임 업계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강력한 집단은 부모들이 아닐까 한다. 성인은 게임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활동에 자율이 허용되고 책임도 따르지만, 부모 영향력 아래 있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마우스든, 스마트폰이든 빼앗고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 게임 산업이 위축된다는 논리는 우리 아이 미래가 위축된다는 논리 앞에 통하지 않을 것이다.

기자 역시 부모가 나의 스타크래프트를 이해하지 못했듯 완전히 새로운 청소년 문화가 등장한다면 100%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없다. 그러나 게임은 새로운 문화가 된지 오래됐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세기말스러운 느낌인 때는 한참 지났다. 게임 말고도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기성 세대가 마우스를 뺏든, 스마트폰을 뺏든 새로운 문화가 등장할 것이다. 그때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질병이란 딱지를 붙여 막기만 할 것인지 묻고 싶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20년 전과 다르지 않은 점부터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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