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콘텐츠를 자랑하며 이용자들에게는 '갓플릭스'라고 불리는 넷플릭스가 IT업계에서는 갑질의 온상이 됐다.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해 국내 기업들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는 마지막 법안소위를 열고 뒤늦은 수습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결론이 나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끊이지 않는 망 사용료 분쟁
망 사용료란 넷플릭스, 구글, 네이버 등 콘텐츠 제공업체(CP)가 통신사(ISP, 네트워크 사업자)가 깔아놓은 망을 쓰는 대가로 내는 비용을 말한다. 망 사용료를 둘러싼 분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슈다. 형태나 망 접속 방식 등이 다양한 IT 인터넷 서비스 특성상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약점을 이용해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사들은 한국에서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사들이 매년 통신사에 수백억원대의 망 사용료를 내는 것과는 상반된다. 국내 CP사들로부터 불평등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넷플릭스 vs SK브로드밴드' 결국 소송까지
최근에는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망 사용료에 대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쉽게 말해 넷플릭스가 부담해야 할 망 사용료가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부터 논쟁을 계속해왔다. 당시 SK브로드밴드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갈등을 중재해달라는 재정 신청을 접수했다. SK브로드밴드가 국내 막대한 트래픽을 일으키면서도 망 사용료를 전혀 내지 않는 넷플릭스에 수차례 망 사용료 협상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해당 재정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 소송을 제기했다. 업계에서는 중재 절차가 진행될수록 방통위의 판단이 SK브로드밴드로 기울면서,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중재를 기다리는 것보다 법원에 판결을 다시 요청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재정 절차가 중단되면서 의미가 없어졌지만, 방통위는 이달 최종 결론 발표를 결정짓고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의 망 사용료 협상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측에 망 운용·증설·이용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ISP는 소비자가 원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전송 의무가 있고, CP는 콘텐츠 제작이라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또 ISP는 소비자들에게 요금을 받기 때문에 CP에게 망 사용료를 청구하는 것은 이중청구라는 것이 넷플릭스 측 입장이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는 "자신들의 소중한 상품이 담긴 택배를 길에 던져두고 고객에게 알아서 전달하라고 뻗대는 꼴"이라며 "CP라면 콘텐츠 제작뿐 아니라 최종 이용자인 고객에게 그 콘텐츠를 어떻게 잘 전달할지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한국에서는 망 사용료를 못 내겠다고 주장하는 넷플릭스가 해외에서는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해외에서도 망 사용료 분쟁을 거친 후 미국 컴캐스트, 버라이즌, AT&T, 타임워너 등 미국 주요 사업자와 망 이용료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밖에도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 등과도 망 사용료 지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터넷 망=양면시장' 이해해야
이같은 논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망이 CP와 일반 이용자들을 매개하는 양면시장의 특성을 지닌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양면시장이란 특정 플랫폼 사업자가 서로 다른 두 그룹을 매개하는 시장을 뜻한다. 신용카드의 예를 보면 양면시장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용카드사는 가맹점과 카드 이용고객을 연결해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맹점으로부터는 수수료를 받고 이용고객에게는 연회비를 지급받는다.
인터넷 망도 이와 유사하다. CP는 인터넷 망이라는 매개체가 없이는 이용자들과의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ISP가 인터넷 망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CP와 이용자라는 그룹을 연결해주기 때문에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셈이다.
양면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는 매개의 대가를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받을 수 있는데, 요금 수준은 사업자와의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신용카드사의 경우 가맹점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받고 이용고객에게는 낮은 연회비를 부과하는 것을 선택한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망 사업자도 CP와 이용고객을 위해 투입되는 망 투자비를 어떻게 회수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SK브로드밴드 측은 "플랫폼 사업자의 망을 통해 고객 집단에 연결되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CP가 망 사용료를 부담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며 "글로벌 CP들은 국내 CP가 부담한 망 사용료에 무임승차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이용자 요금 부담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도로 번잡할 땐 '교통유발부담금', 트래픽 급증엔 '망 사용료'
이같은 망 사용료 논쟁은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CP들의 국내 영향력이 커질수록 개선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국내에서 점유율을 크게 확대하는 양상이다. 모바일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3월 넷플릭스에서 발생한 국내 결제액은 362억원으로 2년 전보다 10.6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유료 이용자 수도 26만명에서 272만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해당 조사가 통신사를 통해 넷플릭스를 이용하거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이용료를 내는 경우 등이 배제됐다는 점에서 실제 이용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통신사 관계자들은 이같은 망 사용료 논쟁의 대상을 막대한 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망 사용료를 부담하지 않는 글로벌 CP로 특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망 사용료는 특정 건물이 들어서 도로가 번잡해졌을 때 부과하는 '교통유발부담금'과 유사한 개념으로 봐야한다"면서 "모든 곳이 아닌 일정 이상의 트래픽을 유발하는 글로벌 CP에 적용돼야 한다"고 짚었다.
교통유발부담금은 교통량을 유발하는 시설물 소유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부과해 교통량 감축을 유도하는 제도다. 연면적 1000㎡ 이상 시설물 소유자에게만 부과되기 때문에 보통 백화점, 대형마트 등 입점 후 도로이용량이 급증할만한 건축물에 적용된다. 이처럼 망 사용료 역시 트래픽 사용량 등 특정 기준에 따라 적정한 수준으로 부과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도로 이용량이 많은 이용자가 혼잡통행료를 부담하는 것처럼 인터넷 망을 대량으로 이용하는 사업자에 대해 망 사용료 부담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글로벌 CP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 등을 포함해 6일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한 후 7일 전체회의를 개최한다. 20대 국회 마지막 소위인만큼 글로벌 CP와 국내 CP 간 역차별을 없애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점친다.
업계 관계자는 "20대 국회의 마지막 회의라 이날 바로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국회에서 자주 논의되고 다음 21대 국회에서도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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