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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신화' 양덕준 레인콤 창업자를 떠나보내며

  • 2020.06.11(목) 10:38

휴대용 음악파일 재생기 사업 일군 벤처 1세대
애플 도발하며 승승장구, IT 부침 온몸으로 겪어

한때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 도발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아이리버 신화' 주인공 양덕준 전(前) 레인콤 대표가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다.

고인은 영남대 응용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해 수출담당 이사를 지내다 퇴직했다.

이후 1999년 1월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아이리버 전신인 레인콤을 창업하고 휴대용 MP3 재생기 사업에 뛰어든 벤처 1세대다.

그가 창업한 레인콤은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존재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 정보통신기술(ICT) 물결에 따른 부침을 온몸으로 겪기도 했다.

'아이리버 신화' 주인공 양덕준 전 레인콤 대표.

지금이야 멜론이나 벅스 등 음악 사이트를 통해 음원 파일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엔 MP3 포맷으로 압축한 디지털 음악을 플래시 메모리나 하드디스크, CD 등에 옮겨 저장, 휴대하면서 들었다. 피처폰, MP3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를 각기 들고 다니던 시대였다.

이전 세대만 해도 소니의 '워크맨'으로 잘 알려진 휴대용 카세트나 CD 플레이어가 대세를 이뤘다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인프라 구축과 함께 MP3 음악 파일 보급이 확산하면서 관련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디지털 가전 제품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강'이라는 의미의 아이리버(IRIVER) MP3 재생기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고 제품 디자인이 유려해 이용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특히 MP3 재생기 같은 디지털 가전 제품은 '청소년이 갖고 싶은 선물' 상위 목록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모으면서 아이리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인터넷 카페와 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돌면서 아이리버는 설립한지 불과 4년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70%, 세계 시장 점유율 25%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다.

실적도 성장했다. 2002년만 해도 이 회사 매출은 800억원 수준이었으나 2년 후에는 4500억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이에 힘입어 2003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으며, 이듬해 벤처기업으로는 드물게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이리버는 스마트폰의 전단계라 할 디스플레이가 달린 스마트 기기나 PMP(포터블멀티플레이어) 등을 만들면서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엔 삼성전자도 휴대용 MP3 재생기를 만들었으나 아이리버를 따라가지 못했다.

잘 나갈 때 아이리버는 '아이팟'으로 유명한 애플을 겨냥해 금발의 백인 여성이 사과를 깨물어 먹는 사진 광고를 세계 주요 도시 공항에 걸기도 했다. 애플과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에 도발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아이리버 신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마트폰이 MP3 플레이어를 대체하면서 급격한 부진을 겪게 된다. 매출은 2004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리버 신화를 일군 양덕준 창업주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2007년 사모투자회사인 보고펀드에 최대주주 지위를 넘기고 경영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2008년 자신이 일군 레인콤을 나와 민트패스를 창업했다. 민트패스는 태블릿PC 형태의 PMP 기기를 내놓았으나 이미 모바일 기기의 대세가 되어버린 스마트폰에 밀려 이렇다 할 두각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양 전 대표는 뇌출혈을 겪으면서도 재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으나 긴 투병을 이어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1호실. 발인은 11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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