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사고 커피를 주문하는 세상은 참 편리하죠. 하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는 노화하는 우리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릅니다. 지금은 쉬운 기술이 나중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으로 커피를 살 때 쌓이는 정보는 빅데이터가 되어 서비스에 반영되고 궁극적으로는 법·제도 개선까지도 이어지지만, 현금으로 커피를 사는 사람의 정보·의견은 외면됩니다. '디지털 정보격차'는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디지털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는 [디지털, 따뜻하게]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이른바 '한국판 뉴딜' 사업에는 빠르게 디지털 정보화하는 사회에서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사람을 껴안는 '포용' 정책이 포함됐는데요.
우리나라보다 일찌감치 디지털 포용 정책을 내놓은 유럽의 사례에 관심이 모입니다. 유럽은 다양한 국가의 정치·경제 공동체인 유럽연합(EU)으로 묶여 있다보니 국가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즉 EU 회원국가별 혹은 한 국가 안에서 세대간·계층별 등의 양태로 격차의 문제가 좀 더 복잡하게 발생하는 것인데요. 이를 세심한 맞춤형 교육 등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오래 전부터 펼치고 있습니다. EU 회원국 소속이라면 어느 정도의 디지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말이죠.
유럽의 디지털 역량, 북부보다 남부 낮아
EU는 '하나의 유럽'을 표방하고 있긴 하나 각 회원 국가별로 디지털 정보 역량이 제각각입니다. 대체로 부자동네인 북부 지역과 상대적으로 낙후한 남부 지역간의 격차가 심각한 수준인데요. 이로 인해 지역간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습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올 디지털(All Digital)'이란 유럽의 비정부단체의 르나도 새바디니(Renato Sabbadini) 최고경영자(CEO)와 얼마전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이 단체는 유럽 전역을 대상으로 디지털 역량강화 노력을 하는 곳인데요.
올 디지털에 따르면 유럽인 가운데 충분한 디지털 역량을 지닌 사람의 비율은 평균 58% 정도입니다. 회원국별로 보면 평균 비율이 상위권에 속하는 네덜란드(85%)와 하위권인 불가리아(35%)의 격차가 크게 벌어집니다.
이에 대해 새바디니 CEO는 "북서부 유럽은 남동부보다 평균 디지털 사용 역량이 훨씬 높은 편"이라며 "유럽은 국가마다 디지털 정보 격차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럽 전역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EU는 올 디지털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년 '올 디지털 서밋'이란 행사를 개최하고 각국 정부 대표자를 초청해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개인에 대한 교육과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설득 작업을 매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의지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새바디니 CEO는 "EU가 회원국들에게 디지털 역량 센터 설립을 위한 투자 등의 정책을 권고할 수 있지만 최종적 책임과 결정권은 각국 정부가 갖고 있다"면서 "올 디지털은 국가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의 인식 제고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디지털 격차 해소보다 디지털 포용
정부는 최근 '디지털 뉴딜'의 일환으로 '디지털 포용'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2008년에 포용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격차 해소는 정보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디지털 능력이 부족한 정보 배제 및 소외된 집단에 대한 지원 정책에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디지털 포용은 격차 해소 뿐 아니라 역량 강화, 기술 및 서비스 제공, 경제 사회 참여를 제시합니다. 디지털 역량을 필수 능력으로 보고 모든 국민의 디지털 활용 능력을 확대하는 데에 중점을 둡니다. 디지털 포용은 디지털 정보 격차보다 확대된 개념입니다.
황용성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KDI 경제정책 정보지 '나라경제'를 통해 "한국은 디지털 격차 해소 정책을 선도적으로 잘 추진해왔지만 여전히 정보 소외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제한된 정책 수단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늦었지만 디지털 포용 정책이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과 덴마크의 디지털 포용 정책
유럽 국가들은 디지털 포용 정책을 꾸준하게 펼쳐왔습니다. 이와 관련 영국은 지난 2017년에 '디지털 기술과 포용 정책'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경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에 완전하게 참여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죠.
이를 위해 디지털 소외가 발생하는 원인을 접근, 기술, 자신감, 동기부여 등 4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봤습니다.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뿐 아니라 다각적인 측면에서 지원합니다.
덴마크는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추진한 '디지털 전략 3대 목표'에서 디지털 포용 정책 관련 '모두를 위한 디지털화(Digitisation for everyone)'를 추진했습니다.
디지털 활용과 접근이 불가능한 사람뿐 아니라 디지털화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도 모두 포용해 국민 모두의 디지털 역량 향상을 목표로 뒀습니다.
덴마크의 포용 정책은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기업을 대상으로도 추진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자금과 정보 부족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업간 디지털 격차는 기업간의 성장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덴마크는 IT 준비도가 낮은 기업에게 대상별로 적합한 공공 부문 디지털 서비스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활용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지역 도서 센터, 교육 센터로 활용
유럽의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 및 포용 정책의 특징은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도서관을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스웨덴은 도서관을 디지털 교육 공간으로 활영한 '디지델 센터(Digidel Center)'를 구축했습니다. 디지델 센터는 스웨덴의 디지털 참여 제고를 위한 시민 네트워크 '디지델'이 설립했습니다.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디지털 교육 및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역 내 기존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지역 교육 거점 구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센터를 설립한 것입니다.
영국도 디지털 포용 관련 도서관의 역할을 강화했습니다. 도서관을 활용해 디지털 활용 교육을 시행하고 직원의 기술 훈련과 함께 프로젝트 랩 공간도 제공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도서관을 비롯한 지역 사회에 있는 주민센터, 과학관 등의 생활 SOC(사회간접자본)를 '디지털 역량 센터'로 선정하는 정책을 '디지털 포용'에 포함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찾아가 배울 수 있는 디지털 교육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죠.
또 지역 내 주요 자원을 활용해 풀어나가는 디지털 포용 정책은 획일적인 디지털 교육이 아닌 지역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합니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연구위원은 "정부 차원의 디지털 교육도 중요하지만 지역 공동체의 힘도 필요하다"면서 "도시에 거주하는 할아버지와 농촌에 있는 할아버지가 원하는 디지털 서비스가 다르듯이 지역사회마다 원하는 디지털 환경과 서비스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당 스마트폰 1대 보유' 등 기기 접근성만 고려하는 환경적 지원이 아닌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디지털 역량이 필요한지, 어떤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가능한지 등 질적 활용 능력 측면의 지원입니다.
유럽은 과거부터 이런 부분을 디지털 포용을 통해 고민해왔습니다. 디지털 및 기술 발전은 우리나라가 앞서나가지만 시민과 사회를 위한 고민은 유럽을 통해 배워야겠습니다.
▷편리했던 디지털의 역설, '디지털, 새로운 불평등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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