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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행’ 알맹이 빠진 2015년 금융생태계

  • 2015.01.15(목) 09:30

매년 연두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는 1년 동안 할 일을 정하는 큰 행사다. 대통령이 직접 보고받고 장관이 국민에게 설명한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 차인 올해는 업무보고 방식도 변했다. ‘융합’이라는 현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키워드를 중심으로 유관부처가 함께 대통령에게 업무계획을 보고하고 토론하는 것도 조금은 이색적이다.

금융위원회가 포함된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방송통신위원회, 중소기업청의 키워드는 ‘역동적 혁신경제’다. 이 중에서도 금융부문의 핵심은 ‘’인터넷 전문은행’을 비롯한 핀테크 산업 육성이다. 직접적으론 금융위와 미래부, 방통위 공통사항이다. 핀테크 기업들이 대부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회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청도 연관이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라는 키워드가 가진 파괴력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금융위를 비롯한 관련 5개 부처는 이런 비중에 걸맞지 않은 준비를 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해부터 침이 마르도록 군불을 땠음에도 업무보고에서 관련 내용은 모두 뒤로 미뤘다. 아주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하지 못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인가기관인 금융위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인터넷은행 이슈의 핵심은 금융회사가 아닌 기업에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활용한 은행업 진출을 허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네이버은행, 다음카카오은행이 나올 수 있는가다. 재벌 계열의 보험과 증권 등 제2금융회사를 거치는 은행업 진출 문제도 주요 관심사다. 모두 금산분리 관련 사안이다.

현재 정부의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지난해 우리 금융권에서 큰 이슈였던 우리은행의 민영화 추진에서 금융전업그룹이라고 봐야 하는 교보생명에 대해서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정부다. 금융위의 방대한 업무보고 보도자료에선 정부의 공식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단 한 줄 들어가 있다.

‘IT와 금융의 융합을 통해 핀테크 산업 육성’이라는 제목으로 ‘실명확인 방법의 합리적 확대 등 인터넷 전문은행 방안 마련’이라고 적었다. 이게 다다. 문장대로라면 금융위는 ‘실명확인 방법의 합리적 확대’라는 기술적인 사항으로 인터넷은행 논의의 범위를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그놈의 ‘…등’으로 여지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애써 쟁점을 부각할 생각도 없다는 방증이다.

금융위는 오는 3월까지 금융위 내 태스크포스(TF)에서 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모든 사항을 검토한다는 원론적인 태도다. 이후 공청회를 거쳐 상반기안에 최종안을 확정하겠다는 스케줄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것도 관련 법 개정 등을 고려하면 빨라야 내년 초부터 적용할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관련 부처의 이견이 있고 협의가 길어지면 언제 될진 아무도 모른다. 2008년 인터넷 전문은행 허용 계획도 그렇게 흐지부지됐다.

그렇다고 전화해 물어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굳이 감추지도 않는다. 그렇게 기사들은 만들어진다. 지난 2일, 그리고 오늘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엠바고를 전제로 사전 브리핑(14일)을 했음에도 관련 기사는 큼지막하게 나왔다. 금융위의 보도해명자료도 뒤따른다. “현 단계에서 확정된 바 없다.”

결국, 잘 돼야 기존 은행과 대기업 계열이 아닌 증권사 몇몇 곳을 대상으로 하는 반쪽짜리 핀테크 산업육성책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벌써 대세로 자리 잡는 이유다. 금산분리 원칙을 깨자는 얘기가 아니다.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정책 추진 속도로는 ‘혁신과 융합’이라는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를 국민과 기업이 체감하긴 어렵다. 이 스케줄을 보면 ‘내가 있을 때는 결정하지 않겠다’는 전형적인 공무원식 사고만이 읽힌다.

정부의 준비되지 않은 군불에 젊은 인재들이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많다. 새로운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 기대감을 안고 산업은 큰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예상대로 기존 은행에 국한한 형식적인 인터넷 전문은행이라면 역동적인 산업 창출은 기대할 것이 거의 없다. 연관 회사들도 시장의 크기가 작다면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긴 어렵다.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핀테크 산업에 올해 2000억 원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창업 자금이다. 그렇게 돈 줘가며 창업하라고 꼬드겨 놓고 먹고살 산업기반은 미약해 이들이 거리로 내몰린다면, 정책금융기관이 준 돈은 부실이 된다. 창업했다 실패한 패배자들만 양산하는 꼴이다. 오발탄일지언정 대통령의 입밖에 쳐다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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