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부터 하나 풀어보자. 다음중 가장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정책은 무엇인가?
1. 부가가치세율을 15%로 5%포인트 인상
2. 20리터 쓰레기봉투 가격을 400원에서 500원으로 인상
3. 육군 상병 월급으로 15만 5000원 지급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으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1번이 가장 저항이 심한 정책이고 2번과 3번은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안이다.
부가가치세율을 높이는 안은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1순위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정책이지만 부가가치세가 역진적인 세금이라는 이유로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부가가치세를 올리자는 말을 꺼내면 당장 '법인세나 소득세부터 올리고 나서 이야기하자'는 반박이 돌아온다.
부가가치세가 불공정한 세금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없지 않다. 월소득이 100만원인 A와 월소득이 500만원인 B를 가정해보자. 실제 우리나라의 가계소비성향 통계를 보면 소득 하위 20%는 월소득을 모두 지출한다. 반면 소득 상위 20%는 월소득의 60% 정도만 지출한다. 그러니 A는 월 소득 100만원을 모두 지출하고 B의 월 지출액은 300만원쯤 된다고 보면 합당할 것이다.
이 경우 가난한 A는 한달에 약 10만원, 부유한 B는 약 30만원의 부가가치세를 물게 된다. 소득이 아닌 지출에 대해 세금을 물리다보니 월 소득이 5배 더 많은 B가 부가가치세는 A보다 3배만 더 낸다. 부가가치세를 내고 난 후의 가처분 소득은 A가 90만원, B는 470만원으로 세금을 부과한 후에 둘의 소득격차는 5.4배로 커지게 된다.
사람들은 그래서 부가가치세율을 올리자는 제안에 대해 대체로 반대한다. 부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책이고,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부유층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거두는 것은 나라살림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것 뿐 아니라 조세를 통해 빈부격차와 소득격차를 줄이는 것까지 그 목적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세금이 필요하면 부유한 회사나 고소득자에게서 걷을 일이지 국민들이 뭘 구입할 때마다 옆에서 몇 퍼센트씩 떼어가는 식의 조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여론을 생각해보면 20리터 쓰레기봉투 가격을 400원에서 500원으로 인상하는 정책이 별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육군 상병의 월급이 15만원에 불과한 현실에 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 쓰레기봉투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나 장병들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부가가치세율을 올리는 정책보다 훨씬 역진적이고 불공평한 정책인데도 말이다.
2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의 판매가격은 서울시의 경우 약 400원(구별로 조금씩 다르다)인데, 쓰레기 봉투를 수거해서 소각 또는 매립하는 데 드는 처리 원가는 봉투당 약 600원이다. 서울시 각 구청들은 봉투당 200원을 구청 재정에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각 구청들은 앞으로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가격을 500원쯤으로 올릴 계획이다. 가격을 올리는 논리는 간단하다. 쓰레기 처리 비용은 배출자가 모두 부담하는 것이 맞는데, 봉투 가격을 낮게 받다보니 재정 부담이 커져서 이제는 좀 ‘현실화’해야겠다는 것이다.
부가가치세율 인상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런 공공요금 인상에는 비교적 덜 반대하는 이유는 ‘현실화’라는 용어 속에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있기도 하고 수익자 부담원칙이라는 점에도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익을 보는 사람, 또는 비용을 유발한 사람이 그 댓가를 치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일이 개인이 각자 비용을 내서 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해야 하는 일인가.
두가지를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모호하지만 쓰레기의 수거 및 처리는 국방이나 치안처럼 국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게 옳다.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거나 고장난 가로등을 고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나서서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자기 돈으로 쓰레기 수거 차량을 구입하거나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지 않는다. 실제로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쓰레기 수거와 처리는 모두 정부가 담당한 일이었다.
쓰레기 봉투를 유료로 팔게 된 것은 쓰레기 처리 비용을 개인들이 부담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쓰레기의 양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공짜가 아닌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게 하면 쓰레기 속에 들어있는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을 자발적으로 분리수거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유인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쓰레기 봉투의 가격은 사람들이 쓰레기 양을 줄이고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도록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수준에서 정해지면 된다. 그런데 어느새 쓰레기 봉투의 가격이 실제 쓰레기 수거 처리비용에 못미쳐 지자체 재정에 적자요인이 되므로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논리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쓰레기 처리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닭에 쓰레기 봉투를 팔아서는 그 비용을 조달하기 어렵다면 당연히 세금으로 모자라는 비용을 충당해야 하며 필요하면 다른 곳에서 세금을 더 걷는 게 옳다.
그러나 현실과 여론은 다소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공공요금 현실화' 또는 '배출자 부담 원칙' 등의 표현으로 치안이나 국방처럼 정부가 무료로 제공해야 할 쓰레기 수거 서비스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도 모자라 거기에 세금을 더 얹어서 걷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는 별 반론이 없다.
개당 400원인 쓰레기봉투 가격을 500원으로 올리는 것은 쓰레기봉투에 25%의 부가가치세를 붙이는 것과 같은 정책이다. 1000원짜리 과자 한 봉지에 붙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것도 '재벌회장이 과자를 사먹을 때도 100원, 거지가 과자를 사먹어도 100원을 내야 하므로 나쁜 세금'이라는 논리로 반대하는 것을 감안하면 쓰레기봉투 가격의 '현실화'가 별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묘한 현상이다. 과자를 사먹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쓰레기 배출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필수적 비용임에도 말이다.
현역 사병들의 월급이 대학생 용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별 이견이나 문제제기가 없는 것도 비슷한 아이러니다. 사병들은 군복무중에 연간 200만원 가량의 연봉을 받는데, 이들이 입대를 하지않고 다른 일을 했다면 받을 수 있는 수입과 비교했을때 장병들은 2년의 복무기간 동안 국가에 약 4000만원의 세금을 내면서 복무하는 것과 같다.
사실 이 돈(군대 운영비)은 국가가 법인세나 소득세 등 다른 세금을 걷어서 충당했어야 할 비용이다. 만약 그랬다면 소득이 많거나 재산이 많은 계층이 더 부담했어야 하는 비용이다. 그러나 마치 쓰레기봉투 가격 현실화처럼 장병들이 국방예산 현실화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비용을 내가며 군복무를 하는 중이다. 그 덕분에 정부는 그만큼 다른 세금을 덜 걷어도 된다.
현역 장병들에게 낮은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정부가 쓰레기 봉투 가격을 인상해서 사실상의 쓰레기 배출세를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역 장병들에게 군복무세를 거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복무에 필요한 각종 총기류와 군복 등의 구입 비용은 부대 운영비 현실화 또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현역 장병들이 내라는 식이다.
이런 정책은 부가가치세율 인상이나 쓰레기 봉투 가격 인상보다 더 나쁘다. 부가세나 쓰레기봉투값은 소비량이 많은 부유층에게 더 많이 부과되는 측면이 있으나 장병들이 내고 있는, 이른바 군복무세는 장병들 개인의 소득과는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가가치세율 인상에 왜 반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런 정책들이 별 저항없이 용인되고 있는 것은 이해되기 힘들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는 것은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올리는 형태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국가가 치러야 할 비용을 다른 곳에 전가하거나 국가가 지원하던 비용 지출을 중단 또는 삭감하는 식으로도 이뤄진다. 양로원에 지급되던 겨울철 연료비를 삭감하는 것은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에게 1인당 얼마씩의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이다.
우리는 매년 이렇게 조용히 새로 태어나는 이름없는 숨은 세금들에 대해 얼마나 적절하게 저항하고 있는가. 한 번 쯤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