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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부채길로 낭만여행

  • 2017.09.15(금) 11:21

[페북 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긴 여름을 떠나보내고
찬바람 부는 가을이 되면

 

스르륵 마음속 한켠에
어딘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간단한 짐을 꾸려
낭만여행을 떠나고픈 계절

 


저녁 무렵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녘 기차 유리로 비치는 일출과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마주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던 90년대 강릉 여행


굽이굽이 99고개 대관령 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서울양양고속도로로
이어진 시간만큼이나 많은 것이 변했다.


2300년의 비밀을 간직한 공간
해안경비를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던 곳
아름다움을 꼭꼭 숨겨왔던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개방 후 첫 가을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 남기영 씨는
매표소 앞에서 표 받는 일을 한다.


"한 번 보면 자꾸 보고 싶은 길입니다.
정동진 썬크루주차장이나 심곡항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좋습니다. 


탐방로 거리는 2.86㎞ 정도예요.
그동안 막혀있던 길이라
천혜의 비경을 볼 수 있죠.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은 매일매일이 달라요.
아 그리고 꼭 오시기 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탐방로 개방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파도가 높은 날은 개방하지 않습니다."

 

 

우린 심곡항에서 출발했다.
매표소를 지나 따라 올라가자
거짓말처럼 눈에 들어오는 풍경
사람들은 "와! 와!" 탄성만 연발한다.


파란 가을하늘, 바닥까지 보이는 푸른 바다에
2300년 신비를 간직한 해안 단구를 보면
탄성 외에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다.

 


그동안 해안경비를 위한 정찰로로만
이용되던 바다부채길은 지난 6월
정식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2300년만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 단구(계단식 지형) 지역으로


파도에 깎이면서 매끄럽게 다듬어진
몽돌 해변도 볼 수 있다.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청아한 노랫가락을 연상시킨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투구바위로 부른다.
생김새가 투구를 쓴 장수와 닮아서다.


투구바위에는 전설도 있다.
당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은
밤재길 하나밖에 없었는데


육발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고개를 넘는 사람들과 내기를 한 후 
많은 이들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마침 강감찬 장군이 강릉으로 부임해
스님으로 변신해 있는 호랑이에게


당장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자
백두산으로 도망갔다는 전설이다.

 


부채바위도 전설을 가지고 있다.
200여 년 전 한 노인의 꿈에
함경도 길주에서 온 어여쁜 여인이 나타나


내가 심곡과 정동진 사이에 있는
부채바위 근처에서 떠내려가고 있으니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노인이 이튿날 새벽 일찍 배를 타고 
가보니 부채바위 끝에 떠내려온
나무 궤짝이 걸려있어 열어 보니
한 여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 뒤 부채바위에 서낭당을 짓고
이 그림을 모셔놨다는 전설이다.

 

 

심곡리에서 25년 동안 횟집을 하고 있는
손춘연 씨는 조용했던 마을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게 마냥 신기하다고 한다.


"마을 이름이 심곡이잖아요.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인데
6.25 당시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고 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제구역이라
군부대의 허락을 받은 후 미역을 따곤 했죠. 


마을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몇 달 전만 해도 작은 슈퍼 하나가 전부였는데
이젠 편의점이 3개나 생겼어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바다부채길을 개방한다고 했을 때
지역주민들과 갈등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가다 보면
아무래도 오염될 수 있고
그러면 생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마을회관에서 회의도 많이 했어요.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었죠.


몇 달 안 됐지만 지금은 잘했구나 싶어요.
아침부터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정말 쉴 틈이 없어요.

지역도 많이 발전하고 활기가 넘쳐요.


많은 분이 보고 즐거워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연을 보전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함께 즐기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
지금은 지자체와 주민이 모두 행복하다.


올가을 어딘가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면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에서
행복한 가을 추억을 남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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