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에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서둘러서 어디를 가?"
"도둑을 쫒고 있어."
"뭐라고? 그래서 그 도둑은 어디있어?"
"아차, 아까 추월해 버렸네"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기대보다 걱정과 혼란이 앞서는 분위기다. 생산성 향상이나 경기부양 효과에 대한 논의는 한가한 얘기다. 현장에서는 '근로시간'의 개념부터가 헷갈린다. 저녁 회식자리에 부서장이 참석을 지시한 경우 근로시간으로 간주할지, 워크숍에서 레크레이션을 즐기면 근로시간에 해당하는지, 주말 거래처와 골프는 근무시간에 포함해야 하는지 등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가장 큰 고민은 기업들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과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 요인이 커다란 게 하나 더 늘었다. 하나의 회사를 둘로 쪼갰다는 얘기도 들린다. 법인을 하나 더 세워 직원들을 절반씩 쪼개서 근로인원을 300인 이하로 맞추는 편법을 쓰는 것. 그러면 1년 6개월간 법 적용 유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업들의 불안과 현장의 혼선 등을 고려해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에 반년 정도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다. 또 노사가 업무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업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탄력적 근무시간제 도입 등도 검토하고 있다.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그렇다고 흐름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ICT기술 발전 및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준말)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농업이나 건설 및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는 투여하는 노동시간이 경쟁력의 절대 요소였지만 AI(인공지능)가 이끄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경제도 이제까지는 선진국 따라잡기에 골몰했지만 글로벌 플레이어와 나란히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앞에서 나온 고사에서처럼 쫓아가는 입장에서는 빠르게 달리기만 최선이다. 선두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 모색이 더 중요해졌다. 방향성 없이 빠르기만 했다간 오히려 자원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 있다.
3D프린터가 주목받던 2012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제3차 산업혁명`이라는 특집기사를 냈다. 제조업 기지가 값싼 노동력을 따라 선진국에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했으나, 기술 발달과 함께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노동량 변수가 줄어들 것으로 진단했다. 애플의 아이패드 소매가격 499달러 중 제조비용(원재료 및 인건비)은 187달러이며, 이 가운데 중국에서의 노동 비용은 8달러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21세기에는 값싼 노동력이 별다른 이점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요시카와 히로시는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라는 책에서 "언젠가 제5차 산업혁명, 제6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변화도 일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진국의 경제 성장은 사람의 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노베이션(혁신)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그렇다고 주 52시간 근로제가 마냥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리는 만무하다. 관건은 새로운 환경에 얼마나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탄력적 대응이 가능하게 하려면 소통이 최선이다. 좋은 법을 만들고 법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와 사용자가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형태의 작업 시스템이 좋을지 함께 모색해 가는 것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한 강원국 작가는 최근 강연에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조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잘 알려주고, 잘 듣고, 함께 해야 한다"며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혁신으로 승부하겠다는 선언이다. 워라벨 즉 '더 잘살아보세'를 향한 새로운 항해가 바야흐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