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재계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강한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볼 때 상법 개정안에서 담고 있는 주요 제도들이 이미 실패한 경우가 많고, 특히 자본주의와 주식시장 제도의 근간을 부정하며 대주주를 역차별하고 있다는 게 재계 주장의 요지다.
지분 1% 이상 소수주주의 청구가 있을 경우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에 대해서는 재계가 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지난 99년 대표적인 단기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가 SK텔레콤 지분 7%를 사들인 뒤 자체적으로 이사 파견을 요구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가했다가 결국 몇 달 만에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2003년에는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 14.99%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른 후 기존 경영진을 압박하다가 1조원의 차익을 얻고 떠났다.
2004년에는 삼성물산이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로부터 '먹튀'를 당했다. 헤르메스 펀드는 당시 삼성물산 지분 5%를 취득한 후 인수합볍(M&A)설을 흘려 주가를 띄우고 2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챙겼고, 삼성물산은 이 과정에서 경영권 방어에 적잖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처럼 상법 개정안이 법무부 안대로 통과되면 앞으로는 이런 사례들이 더 자주 나올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외국계 헤지펀드 등이 적은 지분으로 국내 기업의 경영간섭을 하는 게 쉬워져 국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거라고 걱정하고 있다. '한국형 속도경영'의 장점이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보다 헤지펀드 같은 투기 집단을 위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헤지펀드가 기업 지분을 확보해 자신들을 대변해 줄 이사를 선임해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간섭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헤지펀드는 당연히 기업 전체의 이익보다 펀드 수익률 향상을 위해 당파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강제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며 "단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특정 지배구조를 강요하게 되면, 기업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 입법예고후 한 케이블 경제채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학계 인사들 다수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참석자들은 기업 지배구조가 집행임원제로 획일화되면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선택하게 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현행법상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이사회는 사외이사를 절반 이상 두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오너나 주주들이 정하는 게 아니라 사외이사가 경영자를 선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의 대표 기업 소니와 도요타의 운명이 갈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본이 집행임원제를 도입한 뒤 소니는 이 제도를 채택했고, 도요타는 전통적인 이사회 구조를 고수했는데 결과적으로 소니는 위기를 맞았고 도요타는 건재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집행임원제를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는 없고, 우리의 상법개정안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집행임원제를 도입한 미국과 일본의 경우 기업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들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고, 일본도 1950년 집중투표제 도입후 경영상 혼란이 가중되자 이같은 방식으로 운영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