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책(6.19대책)은 그런 분들에게 보내는 1차 메시지입니다.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싸움닭'이 등장했다. 취임사부터 '역대급', '블록버스터급'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셌다. 입을 떼자마자 최근 보인 시장 과열의 원인을 매매차익을 노리는 다주택자의 과수요, 또 이들의 편법거래로 몰아세웠다. 취임사인데 이례적으로 직접 프리젠테이션 방식 통계까지 꺼내들었다.
여태껏 어떤 주택당국 수장도 취임부터 이렇게 강한 '주택시장 안정'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낸 적은 없었다. 쉽지 않은 국회 청문절차를 거치고 23일 정부세종처사에서 취임식을 가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시작부터 강했다. 15쪽의 취임사 첫 네 쪽(2~5페이지)에서 다주택자를 시장 불안 주범으로 지목했다.
김 장관은 지난 19일 발표한 새 정부 출범 후 첫 부동산대책을 언급하며 "이번 대책은 수요를 억제하는 방안에 집중됐는데 아직도 이번 과열양상의 원인을 공급부족에서 찾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포문을 열었다.
▲ 취임사 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사진: 국토교통부) |
그는 "실제 속내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다르다. 자료를 하나 공개하겠다"며 취임식장에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그가 준비한 화면은 순서대로 지난 5월 전년대비 ▲주택소유(가구수)별 전국 거래증감율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 ▲개발호재지역 거래증감율 ▲강남4구 연령별 거래증감율 등 4개였다.
김 장관은 "실제 집을 구매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택가격이 과열됐던 올 5월과 지난해 5월, 주택거래 현황을 비교해 봤다"며 "공급부족 때문이라면 실수요자들이 많이 몰렸겠지만 올해 5월 무주택자가 집을 산 비율은 전년 동월 대비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증가세를 보였을까? 바로 집을 세 채 이상 가진 사람들"라며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사람들은 5주택 이상 보유자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5주택자 이상)거래는 강남4구에서만 무려 53% 증가했다"며, 강남 58%, 송파 89%, 강동 70% 등 대상지역의 숫자를 하나하나 열거했다.
아울러 서울 용산·성동·은평·마포와 같이 개발호재가 있는 지역에서도 5주택 이상 보유자들이 움직였다는 점을 지목했다. 김 장관이 제시한 용산 5주택 이상자의 지난 5월 전년동기 대비 거래증가율은 용산 67%, 은평 95%, 마포 67%였다.
김 장관은 "이번 과열현상이 실수요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자료가 하나 더 있다"며 집을 구입한 연령층을 분석한 통계를 내놨다. 그러면서 "강남4구에서 지난해와 비교해 주택거래량이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세대가 놀랍게도 바로 29세 이하였다"고 지적했다. 40~50대가 14% 증가율을 보이고 60~70대가 오히려 마이너스였지만 29세 이하는 54%의 증가율을 보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이를 두고 "우리나라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강남 부동산시장에 뛰어들기라도 한 것이냐"고 물으며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세대가 개발여건이 양호하고 투자수요가 많은 지역에서만 유독 높은 거래량을 보였다는 것은 편법거래를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장관은 이어 국토부 직원들에게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며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된다"며 "부동산 정책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 김현미 장관이 제시한 거래증감률 프리젠테이션(자료: 국토교통부) |
김 장관은 국토부가 중점을 둬 추진할 4가지 정책과제 중 첫 번째로도 서민 주거안정을 꼽으며 정책 역량을 집중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집 걱정,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 없는 '주거 사다리 정책'이 필요하다"며 "공공임대주택의 개념을 확장한 공적임대주택 공급 확대, 청년·신혼부부 등 주거취약계층의 맞춤형 지원강화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청년과 신혼부부 적극 지원과 계약갱신 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와 같은 제도 도입도 거론했다.
취임식 직후 국토부 직원들도 술렁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주택정책에 대해 이렇게 통계까지 직접 들어가며 시작부터 강한 입장을 보인 장관은 처음이었다"며 "정치인 출신인 만큼 강한 소신을 정책 드라이브로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취임식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