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직장인 김주인 씨(가명)는 오는 12월말 송파 헬리오시티 입주를 앞두고 있다. 애초에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전셋값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차라리 입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살고 있는 위례 집을 팔아 잔금을 치를 계획이다. 아직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급매로 내놓진 않았지만 요새같은 분위기에 거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걱정이다.
김주인 씨와 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입주할 생각이었지만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입주를 포기했다. 임대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기 위해 전세로 내놨지만 이 역시 거래되지 않고 있다. 전셋값만 자꾸 떨어진다.
헬리오시티 입주를 7개월이나 앞두고 있지만 벌써부터 집주인들은 초조하다. 가격을 낮춘 전세가 나오고 있지만 거래는 뜸하다. 여름이 지나 입주가 다가올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오는 10월~11월 이후 헬리오시티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의 추가 전셋값 하락도 불가피하다. 기존 주택 매매도 어렵고 설상가상 대출까지 꽉 막 막혀 최악의 경우 잔금을 치르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올 연말 입주를 기다리는 송파 헬리오시티/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입주해야 하는데 기존 집 안팔린다는 집주인들
김주인씨와 같은 경우 아직은 입주까지 7개월여 남아 여유있지만 관건은 기존 집이 팔리는지 여부다. 김주인 씨는 "아직은 기존 집을 급매로 내놓을 생각은 없다"면서도 "가을쯤 돼서도 안팔리면 가격을 낮춰서 내놓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잔금으로 4억원 가량을 내야 하는데 이미 중도금대출까지 꽉채워 받았고 1가구 2주택이라 추가 주택담보대출도 불가능하다.
4월부터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서 서울지역 주택매매는 전월대비 반토막났다. 강남4구는 60% 급감했고, 수도권도 31% 감소했다. 매수 희망자들은 더 떨어질 것이란 기대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매수자와 매도자간 힘겨루기 및 거래절벽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벌써부터 은행 대출을 알아보는 집주인들도 있지만 대출규제로 인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송파 헬리오시티 인근 A공인중개업소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은 어렵지만 아직은 신용대출은 해 주는 듯 하다"면서 "신용대출을 받으려고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 전세 놔 잔금 치러야 하는데, 전셋값 떨어지고 임차인도 못구해
이 때문에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르려고 계획하는 집주인들도 많다. 애초 인근에 거주하면서 투자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 특히 자기자금이 별로 없는 경우에는 절실하다. 당시엔 중도금으로 60%까지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입주시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면 자기자본을 들이지 않고 투자를 할 수 있었다.
현재 헬리오시티 전용 84㎡ 전세는 6억5000만~8억원까지 나와 있다. 하지만 전셋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임차인들도 더 기다려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하반기까지 기다려보자는 세입자들이 많아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전용 59㎡(766가구)보다 물량이 많은 전용 84㎡(5132가구)의 경우 저층은 여름이 지나면 6억원선까지도 내려갈 수 있으니 조금더 기다려도 될 듯 하다"고도 귀띔했다.
상황이 이러니 임차인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하반기로 갈수록 전세값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악의 경우 임차인을 찾지 못해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변 전셋값까지 떨어지면서 주변 낡은 주택에서도 임대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거나 이사시기 불일치, 제때 입주를 못하는 현상 등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집값이 오를 가능성과 새집 등 똘똘한 한채를 보유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 급매로 내놓기보다 끝까지 안고 가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입주 임박해 급매로 내놓을까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워낙 세대 수가 많기 때문에 여러 사례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과거 잠실 주공 1~4단지를 재건축한 엘스, 리센츠 등 2008년 입주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이후 전셋값과 집값 모두 올랐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경기가 고꾸라지는 시기였다. 당시 정부는 역전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집주인 대상으로 임차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해소하기도 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선 하나같이 입주대란까지는 아닐 것으로 낙관했다.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원들은 이주비 1억7000만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잔금부담이 크지 않아 전세보증금 3억5000만~4억원 정도만 받아도 문제없다"며 "입주 시점에 급매 물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2004년 이후 산 조합원들은 등기시점까지 전매가 안되고 분양권의 경우 55% 양도세를 물리는 등 규제때문에 급하게 매물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퇴로가 막힌 영향으로 한계상황에 부딪힌 집주인들로 인해 입주대란을 되레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