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도심 주택 공급을 위해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많은 사업장에서 요구한 용적률 상향을 허용, 층수를 높여주는 대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을 기부채납 하도록 해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재건축 조합들의 참여 여부다. 오랜 시간 사업이 표류하던 사업장이라면 새로운 형태의 재건축 사업에 관심을 가질 만하지만 기부채납을 통한 이익 환수와 단지내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조합에서는 거부감이 큰 상황이다.
◇'동력' 확보할까
8.4 주택공급 방안중 고밀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은 5만가구, 공공재개발 사업 대상 확대를 통해서는 2만가구 등 총 7만가구가 포함돼있다. 전체 13만2000가구의 절반 이상이다.
특히 이번 대책에 새로 포함된 고밀재건축은 공급방안중에서는 가장 많은 규모를 담당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아직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않은 사업 초기단계 사업장 가운데 20% 가량은 고밀재건축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동안 다수의 사업장이 요구해온 용적률을 상향, 최고 층수를 50층(기존 35층)까지 허용해주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LH나 SH 등 공공이 참여하는 만큼 자금조달이 쉽고 사업 추진 과정의 투명성 등이 보장된다는 게 장점이다. 재건축 조합내에서의 갈등과 조합장 비리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업장에서는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는 방식이다.
시장에선 2종 주거지역(층고 제한)이 많은 목동을 비롯해 노원구 중계동 일대 단지들이 고밀 재건축을 시도할 만한 곳으로 꼽는다. 20여년째 사업 진행이 더딘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역시 고밀재건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이들 지역 조합원들이 고밀재건축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고밀재건축 사업을 위해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접촉할 것"이라며 "이를 통한 주택 공급을 5만 가구로 예상하고 있는데 과도한 숫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여전한 '물음표'
정부의 고밀재건축이 시장에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려면 재건축 대표 지역인 강남에서 참여하는 사업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고밀재건축에 회의적이다. 개발이익(증가한 주택 수)을 기부채납으로 환수, 공공임대‧분양주택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이전에 층수 제한을 풀어달라고 한 것은 재건축을 통해 지역 랜드마크 단지로 거듭나기 위해서였다. 최근 강남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을 보면, 단지 고급화와 높은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다른 지역과 차별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높은 층수는 차별화할 수 있는 1순위 요건이기도 하다.
반면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방안은 조합원들의 이 같은 욕구와는 방향이 다르다. 단순히 공급 가구 수를 늘리기 위한 용적률 상향은 오히려 주거환경을 해칠 수 있고, 고급 랜드마크 단지로서의 위상도 떨어질 수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중장기적 사업성도 달성하기 힘들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제한된 부지 안에서 건물 층수를 높이면 저층은 조망권이 침해되는 등 답답함이 커 쾌적한 주거환경과는 거리가 멀다"며 "입주민이 늘어나는 만큼 주차장 확보를 위해 지하도 깊게 파야하고, 층수가 높은 건축물을 지어야 해 공사비도 늘어나 조합 입장에선 개발이익이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재건축 조합들의 고밀재건축 참여를 이끌기 위해선 8.4대책에서 내놓았던 내용을 일부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이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상한제 등 여러 규제가 적용되는 가운데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나는 이익을 기부채납으로 최대 70%까지 환수하면 조합원 입장에선 고밀재건축의 매력도가 크게 낮아진다"며 "기부채납 비율을 조절하거나 관련된 다른 규제를 낮추는 등의 보완이 있어야 참여하는 조합이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 기대와 달리 조합원들은 재건축을 주거환경 개선 뿐 아니라 수익을 얻기 위한 사업으로 본다"며 "단순히 새 집을 얻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조합원들은 고밀재건축을 했을 때 사업성이 있는지가 중요한데 아직 성공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시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며 "고밀재건축이 성공하려면 주요 사업장에서 성공하는 사례를 보여줄 필요가 있어 어느 단지가 시범사업장으로 선정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