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 사업설명회 언제 해요?"
요즘 정비사업구역 내 주민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인듯 한데요. 서울시와 SH공사가 코로나19사태로 사업설명회를 잠정 중단하자 주민들끼리 모여 사옥에 찾아갈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합니다.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우린 안 해요!'라고 외면했던 공공재건축(공공참여 고밀재건축) 사업과는 참 다른 분위기입니다. 유독 공공재개발이 잘 나가는 이유는 뭘까요.
◇ '속도도 내고 상한제도 피하고'
정부가 8·4대책에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 중 하나로 공공재개발과 공공참여 고밀재건축을 제시했는데요. 둘 다 LH나 SH 등 공공이 사업시행자로 참여해 공공성을 높이는 대신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업이지만 분위기가 영 딴판입니다.
공공재건축 사업은 규제에 비해 인센티브가 적은 편이라 주목도가 떨어지는 반면, 공공재개발은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가 적절히 제공돼 여러 구역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공공재개발 사업은 '빠른 속도+분양가상한제 면제'가 가장 큰 인센티브입니다.
일반 재개발은 조합을 설립할 때 토지등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해서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는데요. 공공재개발은 조합 설립 없이도 토지등소유자 66.7%만 동의하면 공공사업시행자를 지정할 수 있고, 이미 조합이 설립됐다면 조합원 50%의 동의를 얻어 공공을 공동사업시행자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공공재건축과 달리 분양가상한제 적용에서도 제외됩니다. 정부가 재건축을 집값 상승의 불씨로 보고 있기 때문에 공공재건축엔 분양가상한제를 여전히 적용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점인데요. 8·4대책을 통해 공공재개발 대상으로 포함된 서울시 정비구역 176곳 중 145곳(82%)이 강북 지역이라는 점도 반영이 된듯 합니다.
이 밖에도 용적률 인상, 사업비 지원, 기반시설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요. 국토부가 공공재개발 수익성 개선 효과를 모의 분석한 결과 이런 공공재개발 특례 적용 시 사업성이 종전 99.4에서 113.0으로 약 13.6% 개선된다고 합니다.
다만 기부채납으로 조합원 분양을 제외한 나머지 50%를 임대로 공급해야 하는데요. 임대주택에 수익형전세 등이 포함돼 있기도 하고요. 내달부터 일반 재개발의 임대주택 의무건립비율 상한이 기존 20%에서 30%로 상승돼 일반 재개발과 비교해서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 건 아닌듯 합니다.
◇ 이미 4곳 신청…"정식 공모하면 더 추가될듯"
이런 혜택에 정식 공모를 하기 전부터 공공재개발 신청서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SH공사에 따르면 26일 기준으로 ▲동작구 흑석동 흑석2구역 ▲종로구 사직동 사직2구역 ▲성북구 성북동 성북1구역 ▲영등포구 양평동 양평14구역 등 4곳이 신청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재개발을 추진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한 곳이고요. 이 밖에도 유선 문의·상담을 통해 20곳 정도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 13~14일 공공재개발 설명회를 진행하고 18일부터는 각 구청을 돌면서 설명회를 할 예정이었는데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설명회를 잠정 중단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은 제각각 공공재개발 추진 준비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지역 주민들끼리 모여 추진위원회를 꾸리거나 유선 문의 결과를 서로 공유하기도 하고요. 일부 주민들은 직접 SH공사 등을 찾아 문의를 할 정도라고 합니다. SH공사 관계자는 "공식 설명회가 중단되자 유선 상담을 받던 주민들이 3~4명씩 모여 방문해 회의실에서 설명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내달부터 정식 공모가 시작되면 공공재개발 신청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용산구 한남1구역, 종로구 창신1‧2‧3동과 숭인1‧2동, 영등포구 신길1구역 등이 공공재개발 추진모임 또는 추진위원회를 꾸리는 등 본격적으로 사업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 주민갈등 조짐도…순항하려면?
물론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재개발 사업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민 갈등인데요. 공공재개발 '신청'은 주민 동의율 10% 이상이면 가능한데요. 이에 주민 합의 없이 일부 주민들끼리 신청서를 내면서 내분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공공재개발을 신청한 4곳 중 한 구역의 조합원은 "공공재개발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확실히 모이지 않았는데 동의서를 내 주민들끼리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신청을 철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비구역 해제 문턱이 낮은 것도 갈등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르면 토지등소유자 33.3% 이상이 요청할 경우 정비구역에서 해제할 수 있는데요. 공공재개발 추진 동의율 66.7%를 채워도 나머지 33.3%가 반대하면 재개발 추진과 해제 요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셈입니다.
주택공급활성화지구가 지정되기 전까지 분양권을 노린 신규 전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11월에 공공재개발 구역 선정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주민설명회, 공공시행자 지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주택공급활성화지구를 지정할 수 있거든요.
이은형 한국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유주간 갈등, 보상금액 및 추가분담금 산정, 신규 전입 등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기존 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았던 이슈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