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매립장, 납골당, 정신병원에 장애인 시설까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현상에 이제는 임대주택도 포함되는 것일까.
최근 정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방안의 핵심은 그동안 재건축 조합들이 요구했던 용적률 상향을 허용해주는 대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늘어나는 주택)을 기부채납 받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용적률이 늘어나면 건물 높이가 높아져 지역 랜드마크 단지가 될 수 있고, 일반분양 물량이 늘기 때문에 재건축을 통한 조합원들의 수익도 증가한다. 개발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수익 일부를 가져가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이 방안이 나온 직후부터 실효성을 두고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난 주택 가운데 50~70%를 기부채납으로 환수하는 게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재건축 단지에 대해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 등이 적용돼 사업성이 제한받는 상황에서 기부채납 비율도 높아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부채납 한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도 크다. 최근 강남을 비롯한 서울 재건축 조합들은 재건축을 통한 단지 고급화를 원한다. 하지만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고급 이미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조합원 사이에 존재한다. 사업이 완료된 이후 단지 미래가치(집값 상승)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공공재건축을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 속에서 '우리 단지에 임대주택은 안 돼'라는 님비 현상이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같은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거복지 선진국인 네덜란드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 지난해 유럽의 임대주택을 취재하기 위한 출장 인터뷰중 피어 스메스(Peer Smets) 암스테르담 자유대 사회학과 교수는 "물리적으로 임대와 자가 주택이 잘 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교류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암스테르담 내에서 자녀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태워 다른 지역 학교에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소셜 믹스를 통해 같은 지역에 산다고 해도 내 아이는 더 좋은 지역의 학교에 보내기 위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유럽이나 우리나라나 인종 혹은 빈부격차에 의해 한 곳에서 서로 어울리며 살지 못하거나 어울려 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섞여 있어도 함께 하지 않는 것과 애초 함께 하지 않으려는 것,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공공재건축의 실효성을 두고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이렇게 조언하기도 했다. "고급 강남 재건축 단지에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거기에 살고 싶은 서민이 어디 있겠나. 무시 받고 경제적 수준 격차를 직접 겪으면서 자괴감을 느낄 뿐, 차라리 기부채납을 현금으로 받아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따로 짓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강남 한가운데 임대주택은 안 되고,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임대주택을 지어 그곳에서 그들만이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일까. 동시에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임대주택은 도심 외곽지역에 일반 아파트에 비해 단출한 단지 구성, 작은 평수로 지어져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큰 게 사실이다. 임대주택이 경제적으로 마이너스로 여겨지는 것도 이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결국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경기도가 무주택자면 누구나,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도심에 짓는 기본주택 공급 계획을 밝히며 임대주택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반전세 혹은 월세 전환이 늘면서 이에 대한 대책중 하나로 임대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역시 지속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해 장기 공공임대 재고율을 연내 OECD 평균인 8%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충분한 임대주택 공급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누구나 살고 싶어 할 수 있도록 주택 질을 높이는 것이다. 단기간에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고 주거 환경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임대주택을 '님비'가 아닌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의 대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들이 더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눈으로만 보이는 임대주택 공급 숫자에만 매달리지 말아야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