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건설 시장을 심폐 소생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기업구조조정(CR) 리츠' 가 제시됐습니다. 리츠(부동산투자신탁회사, 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가 미분양 주택을 사서 임대 등으로 운용해 얻은 이익을 배당하게 하는 방식이죠. 특히 지방 경기가 휘청일 때 정부가 쓰는 긴급 처방입니다.
건설 경기 혹한기였던 2009년, 2014년에 이어 올해 10년 만의 부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전국 미분양 가구가 '위험선'(6만2000가구)을 다시 돌파한 가운데 CR리츠가 지방 건설 경기 숨통을 트며 '4월 위기설'을 진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요?
지방 미분양 살리기 대작전?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8일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 중 하나로 지방에 집중된 미분양 해소를 위해 CR리츠를 활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한 CR리츠에겐 세제 지원을 해주는 게 골자인데요. ▷관련기사: PF 막힌 땅 LH가 사고, 미분양 산 리츠는 감세(3월28일)
CR리츠는 건설 경기가 위기일 때마다 등장하는 일종의 '회심의 카드'입니다. CR리츠는 리츠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기업구조조정용 미분양 부동산을 매입·운용하고 이익을 배당하는 상품이죠. 일단 임대로 운영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분양해 수익을 내기도 합니다.
정부 입장에선 민간 자본을 활용해 미분양을 해소할 수 있고, 기업은 '빈 집'을 운용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2001년 '부동산투자회사법'에 의해 리츠 제도가 시행되면서 CR리츠도 최초 도입됐지만 실제 등장한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입니다.
당시 정부가 건설사 구제 방안의 일환으로 CR리츠를 활성화하면서 2009년 지방 미분양 매입을 시행했고, 부동산 침체기였던 2014년에도 CR리츠가 활용했습니다. 최근 건설 업계에서 CR리츠 부활 요구가 잇달아 나온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입니다.
2022년부터 금리 인상, 집값 고점 인식 등으로 집값 상승세가 멈추고 지방을 위주로 집값 하락, 미분양 등이 심화하고 있거든요. 특히 지방은 미분양이 쌓이고 있는데도 신규 분양이 이어져 공급과잉, 시장 악화 우려가 커졌죠.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6만4874가구로 전월(6만3755가구)보다 1.8% 늘었는데요. 지난해 11월 5만7925가구로 줄어드는가 싶더니 이후 3개월 연속 증가세입니다. 국토부는 미분양 위험 기준을 '6만2000가구'로 보고 있었는데요. 올해 들어 두달 연속 경고등이 켜진 셈이죠.
지방의 사정은 더 심각합니다. 2월 지방의 미분양 주택은 5만2918가구로 전체의 81.6%를 차지하고 있죠.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도 1만1867가구 중 9582가구(80.7%)가 지방에 몰려 있고요.
이에 정부는 CR리츠가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미분양 리스크를 해소하 수 있도록 세제 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취득세 중과배제(준공 후 미분양 한정), 취득 후 5년간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가 그 내용입니다.
취득세 중과 시 세율이 12%지만 중과를 배제하면 취득가액 6억원 이하 주택은 1%(6억원 이상 최대 3%)로 낮아집니다. 이달 28일부터 내년 12월31일까지 매입한 주택이 적용 대상이고요. 다만 양도세 혜택은 미분양 상황 등을 봐가며 추후 검토키로 했고요.
미분양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CR리츠를 시행하면 지방 건설사들의 숨통이 일부 트일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국토부 관계자는 "CR리츠는 2009년에 2500가구 정도의 물량이 매입됐는데, 짧게는 2년에서 4년 안에 100% 다 매각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위기 직후 9개 리츠가 대구, 천안, 진주 등의 미분양 주택 3404가구를 매입해 운용했는데요. 그 결과 미분양 주택을 보유한 건설사는 리츠 실행 전 손실을 최소 30% 이상에서 10% 내외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투자자는 연평균 6% 안팎의 수익을 거뒀고, 대출 금융기관은 원금과 약정이자를 모두 회수했죠. 국토부는 현재 미분양 주택을 가진 건설사들의 참여를 자신하는 모습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별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어느 정도의 매입 수요는 분명히 있다"고 했는데요.
다만 CR리츠가 건설 경기 전반을 개선시키는 효과는 제한적일 거란 예상이 우세합니다. 건설 경기 악화로 투자 매력도가 떨어져 미분양 주택 중에서도 일부만 사업성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인데요.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지방 미분양이 심각한데 입주 물량은 쌓이니까 선제적인 카드로 내놓은 것 같다"면서도 "다만 큰 효과를 보려면 매입 규모가 커야하는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서 쉽진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이어 "더군다나 리츠는 투자자들이 이익을 나눠주려면 임대료 수익이 잘 나와야하는데 미분양 주택은 임대료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미분양 내에서도 옥석가리기가 이뤄져 그나마 사업성 있는 주택만 구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전국 미분양 주택이 16만가구를 넘었지만 CR리츠가 매입한 주택은 2500여가구로 1.5% 수준에 불과했죠. 결국 '4월 위기설'을 앞두고 안심할 수 있도록 나온 일시적 조치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업계에선 4월 중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이 뇌관이 돼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금융 업계도 위기를 맞을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거든요. 정부는 선을 그은 상태입니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4월 위기설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딱 잘라 말했는데요.
실제로 과거 CR리츠가 실행됐던 시점과 비교하면 현재의 미분양 수준이 당장 심각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 자료를 보면 CR리츠를 도입했던 2009년 3월은 전국 미분양 주택이 16만5641가구에 달했고요.
2014년 8월엔 전국 미분양 주택이 4만4784가구로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준공 후 미분양이 1만9136가구로 42.7%에 육박했습니다. 반면 올해 2월 미분양 주택은 전국 6만4874가구로 준공 후 미분양(1만1867가구)가 18.3% 수준이죠.
하지만 건설 경기 전망이 여전히 먹구름인 만큼 정부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텐데요. 좀 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진미윤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이학박사는 "CR리츠는 일시적으로 심각한 재무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쓰는 구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현 상황이 긴급하다는 뜻"이라며 "4월 위기설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심리적 카드로서 출구 전략을 마련하는 듯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다만 미분양이 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경기가 안 좋아졌다고 구제해주면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고, CR리츠가 시장에 얼마나 안정감을 줄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며 "임시방편으로 반창고를 붙이는 게 아니라 대수술이 필요한 때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