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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청약제도]②'찐 무주택자'는 웁니다

  • 2024.09.26(목) 12:12

분양가상한제가 야기한 '로또 청약'
분양가 뛰고 공급 줄어도 매번 '선당후곰'
분양가 규제? 비아파트 활성화? 경쟁만 과열

주택 청약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서울은 분양가상한제가 야기한 '로또 청약'이 주택 수요자들의 매수 심리를 자극해 '묻지마 청약'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규 공급 부족, 분양 원가 상승 등도 청약을 부추긴다.

12월부터 '무주택'으로 간주하는 빌라(다세대·연립) 1주택자까지 청약 시장에 뛰어들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갈수록 '찐'(진짜) 무주택자들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전문가들은 상한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로또 청약' 왜 생기나? 

비즈워치가 26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서 올해 1~9월 청약 접수 결과를 확인해 본 결과, 올해 서울에서 청약을 받은 단지는 총 21곳으로 그중 8개 단지의 1순위 평균 당해지역(서울) 청약 경쟁률이 세 자릿수에 달했다. 

절반인 4곳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공급 단지다. 2월 공급한 서초구 '메이플자이'는 81가구 모집에 3만5828명이 신청해 44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7월 서초구에서 청약을 받은 '래미안원펜타스'는 178가구 모집에 9만3864명이 신청해 527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어 8월 강남구 '래미안 레벤투스'가 71가구 모집에 2만8611가구가 신청해 403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9월엔 강남구 '청담 르엘'이 85가구 모집에 5만6717개의 통장이 몰리면서 667대 1의 역대급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이처럼 강남 아파트에 청약자들이 유독 몰린 배경엔 '로또 청약'이 있다. 현재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 4개 자치구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신규 분양 아파트는 '당첨만 되면 로또'라는 인식이 생겼다.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되다 보니 당첨만 되면 많게는 십수억원의 차액을 기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번졌다. 무주택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시세 차익 목적의 투자자들도 대거 청약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상한제는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분양 가격을 제한하는 제도로 1997년 첫 도입됐다. 이후 1999년 분양가 자율화로 규제가 풀렸다가 집값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2005년 재도입됐다. 2017년엔 공공택지뿐만 아니라 민간택지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집값 상승세가 꺾이면서 상한제 적용 범위를 좁혀 나갔다. 하지만 강남3구와 용산은 '집값 풍향계' 역할을 하는 지역인 만큼 규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상한제가 분양원가 인상, 공급 위축에 따른 불안 심리와 맞물리며 각종 불균형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8월 말 기준 '민간아파트 분양 가격 동향'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서울 민간 아파트 1㎡당 평균 분양 가격은 1304만3000원, 1평(3.3㎡)당 평당 분양가는 4311만7000원이었다.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 2월부터 꾸준히 올라 올해 6월엔 평당 분양 가격이 처음으로 4000만원대를 돌파(4190만4000원)했다. 7월에는 4401만7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 2018년 2월(2192만1000원)과 비교하면 두 배나 올랐다. 

이처럼 공사비는 올랐지만 분양가를 충분히 높일 수 없게 되자 주택 사업자들이 분양을 미루거나 사업을 중단하면서 공급이 일부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월평균 6616건으로 전년(1만7445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4년 서울 1순위 청약경쟁률 세 자릿수 단지/그래픽=비즈워치

설 자리 좁아지는 '찐 무주택자' 

연말부터는 청약 경쟁이 더 과열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일 빌라 1주택 보유자를 무주택자로 간주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침체한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 

지금은 수도권에서 전용면적 60㎡·공시가격 1억6000만원 이하인 주택은 청약 때 무주택으로 인정받는다. 12월부터는 아파트 기준은 그대로 두고 비아파트(다세대·다가구·연립·단독·도시형생활주택 등) 기준을 수도권 85㎡·공시가격 5억원 이하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서울에서 시세 7억~8억원의 빌라를 보유한 사람도 무주택으로 간주된다. 이들까지 청약 시장에 뛰어들게 되면 '로또 청약' 등 인기 분양 아파트의 경우 청약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무주택자로 지내 온 '찐'(진짜) 무주택자들이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 속에 시장에선 민간택지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쟁이 과열되면서 시세 차익만 노리고 자금이 부족한데도 '묻지마 청약'을 하거나 위장 전입 등의 부정 청약이 난무하는 등 혼란만 커져서다.

실제로 원펜타스의 경우 부정청약 민원에 따라 전수조사 점검이 예고되자, 일반공급 물량의 약 17%가 청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부정청약' 논란 래미안 원펜타스, 잔여 세대 '50가구' 떴다(8월22일)

다만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경우 분양가가 시장가격에 맞춰 오르면서 시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공급한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 라첼스'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3억원가량 높게 책정되자 이후 일대 지역 집값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무주택자들의 주택 마련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분양가상한제는 가격을 크게 억누르지도 못하고 특정 지역에서만 작용하다 보니 오히려 투기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며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상한제 지역은 오히려 '비싼 동네'라는 인식을 주면서 집값을 띄우는 효과도 있다"며 "청약제도의 본질을 생각해서 실수요자들이 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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