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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유보금 과세의 '불편한 진실'

  • 2014.07.14(월) 18:08

6공시절 과세 '부활'..최경환 '엉뚱한 발상' 지적
"신용등급 하락 없어" vs "대기업 투자 안해"

기업이 회사내에 쌓아놓고 쓰지 않고 있는 자금, 이른바 '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내놓을 첫번째 경기부양 대책으로 지목되면서 뜨거운 이슈로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면서도 소비를 촉진시키고, 부족한 세수도 확충할 수 있는 자구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대외 신용도를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이 세금을 낸 후 남은 이익에 다시 법인세를 매기기 때문에 '이중과세'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게다가 유보금 과세는 2기 내각의 경제사령탑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얼마 전까지만해도 '엉뚱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던 사안이다. 사내유보금의 과세 논리를 마련하려면 기획재정부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되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정부가 논란이 되는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언론에 미리 흘려, 업계 반응과 여론 추이를 점검하는 '애드벌룬'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반대론이 거세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칼집에 집어넣으면 된다. 기업들에게는 정부가 유보금 과세 카드를 검토할 정도로 경기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정부가 한 발 후퇴했으니 기업들은 앞으로 유보금을 투자나 배당으로 적극 활용하라는 명분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로서는 크게 손해볼 것도 없는 장사다.       

 

 

◇ "12년 전 제도를 꺼내어"(feat. 이인영)

 

사내유보금 과세 제도는 1990년대 비상장기업을 상대로 시행된 적이 있다. 제6공화국 시절이던 1991년부터 10년간 시행되다가 2002년 폐지됐다. 당시 정확한 제도의 명칭은 '적정유보초과소득 추가과세'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많으면 법인세를 더 매기는 방식이었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이 지난 2월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도입 초기에는 자기자본을 100억원을 넘거나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비상장기업을 대상으로 25%의 추가 과세율을 적용했다. 1994년에는 세율을 15%로 내렸고, 이듬해 기업발전적립금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점차 약해졌다.

 

비상장 대기업이 이익을 내고도 배당을 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소득세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정상적으로 배당하는 상장기업과의 과세형평성도 감안했다. 그러나 기업이 사내유보를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경영 활동을 과도하게 막는다는 지적에 따라 2001년 말 국회가 폐지를 결정했다.

 

10여년간 잊혀졌던 사내유보금 과세는 지난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사진)은 11월 법인세법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추가 과세를 추진했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거나 자본금이 300억원을 초과하는 '재벌 대기업'을 상대로 기준을 넘은 사내유보금에 15%의 법인세를 추가로 매긴다는 내용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취임에 앞서 조심스럽게 여론 동향을 살피고 있다. 조세형평성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와 달리, 정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업 투자와 소비 활성화를 동시에 꾀한다는 복안이다.

 

최 후보자는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과도하게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계 부문의 소득 증가세가 둔화되고, 이것이 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며 "근로소득과 배당 촉진 등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신용은 죽지 않는다"(feat. 신평사)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줄이기 싫어하는 이유는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대외 신용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은 기업이 내부 자금을 줄이고, 외부 차입을 늘릴 수록 원리금 상환능력에 의문을 품게 된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사내유보금을 적게 쌓은 기업은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차입금 규모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정책 하나로 기업의 신용등급을 하락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적정 사내유보금을 초과하는 대기업들은 이미 탄탄한 재무구조와 우량한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들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기업이 낸 이익에 대해 유보 대신 투자를 선택하면 당연히 외국계 신용평가사들이 싫어할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평가 항목에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부분을 넣어야겠지만, 신용평가 점수를 떨어뜨릴 요인은 극히 미미하다"고 말했다.

 

◇ "투자 안해"(feat. 대기업)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면 기업들의 세금 부담만 커질 뿐, 실제 투자를 유도하는 효과는 부족하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설비투자에 활용할 경우 자산 항목에 현금자산에서 유형자산으로 변화가 생기지만, 사내유보금 규모는 동일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기업 입장에선 사내유보금은 배당을 통해 기업의 내부 자금이 외부에 유출될 경우에만 감소하게 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과세를 통해 사내유보를 억제하는 것은 배당 촉진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투자 유도와는 관련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 출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과세 대상이 될 대기업들도 과세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사내유보금의 대부분은 이미 기업의 자산으로 투자된 자금"이라며 "투자로 돌리라는 것은 기존에 지어진 공장을 허물어 다시 투자하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 "과거는 묻지 마세요"(feat. 최경환)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대기업 사내유보금 과세 법안은 여야 의견이 극명하게 대립되면서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내건 '경제 민주화' 깃발을 정부와 여당이 가로막은 모양새다. 지난 2월 현오석 경제부총리(사진)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면 투자에 영향을 주지 않고, 배당만 촉진해 오히려 투자가 위축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2월1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최 후보자는 한술 더 떴다. 그는 "사내유보금에 과세한다고 투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며 야당의 과세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경제부총리 후보자 스스로 기업을 향한 '채찍'에 거부감을 보인 만큼, 야당의 법안을 그대로 따라가기엔 부담스러워졌다. 사내유보금을 많이 쌓았다고 세금을 더 매기는 대신, 근로자와 투자자에게 유보금을 나눠줄 경우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등 '당근'을 제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정부가 이르면 다음 주중 발표할 하반기 경제운용방향과 세법개정안에 사내유보금 과세를 포함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담을 가능성은 열려있다. 다만 여론이나 분위기가 우호적이어야 한다. 정부는 확인도, 그렇다고 강력하게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기재부는 "기업소득이 가계로 흘러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중에 있으나,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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