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만이 많습니다. 나라가 해준 게 뭐 있다고 이렇게 많은 세금을 걷어가는지, 내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 부호를 달게 되는게 인지상정인데요.
그래서 거위털을 뽑듯이 아프지 않게 세금을 걷는 기술이 요구됩니다. 전임 청와대 경제수석이 거위털 발언으로 호된 비판여론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위정자들이 조세저항을 줄이면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묘안을 고민해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금 걷는 기술의 차이는 형평성에서 나옵니다. 비슷한 소득을 가진 남보다 많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수평'을 맞추고,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만드는 '수직'을 모두 감안해야 합니다. 이런 조세형평성을 맞추면 그나마 납세자들이 덜 아프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요즘 정부의 세금 정책이 유난히 욕을 많이 먹는 이유도 형평성에서 균열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서민의 세금을 늘리고 부자의 세금을 깎는 기형적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죠. 하지만 정부는 끝까지 서민 증세와 부자 감세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는데요. 이를 다시 뒤집는 분석이 나와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 Round1 : 배당소득 세금 깎기
정부의 세금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곳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입니다. 1989년에 만들어진 시민단체로 정부보조금 없이 시민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곳입니다. 여기서 박근혜 정부의 조세정책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는데,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장 차이가 큰 항목은 '배당소득 증대세제'입니다. 상장기업 주주가 고배당을 받으면 원천징수 세율을 14%에서 9%로 낮춰주고,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소득세 최고세율 38%가 아닌 25%의 분리과세 혜택을 주는 내용입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달 국회에 제출한 세법개정안에는 배당소득 증대세제 신설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270억원씩 810억원의 세금을 깎아준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경실련이 추정한 감세 효과는 10배가 넘게 나옵니다. 국세청의 2013년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 종합소득 2000만원 이상 고소득자가 거의 1조원(9784억원)의 감세 혜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배당소득 증대세제는 상장기업의 고배당 주주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부자 감세'로 지목받는 항목인데요. 과연 정부가 감세 규모를 축소한 것인지, 경실련이 부풀린 것인지는 2017년쯤에나 정확한 집계가 가능할 전망입니다.
◇ Round2 : 근로자 연봉 올리기
정부의 세법개정안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근로소득 증대세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야심작으로 꼽히는데요. 기업이 근로자의 연봉을 올려주면 가계소득이 늘어나고,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 활성화를 꾀한다는 '선순환' 시스템입니다.
기업의 임금 증가분에 대해 10%의 세액공제를 부여해 연봉 인상을 유도하는 방식인데, 2016년부터 3년간 1000억원씩 총 3000억원의 세금을 덜 받게 됩니다. 기재부는 3000억원 이상의 소비 촉진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죠.
반면 경실련은 저소득층일수록 소비 성향이 낮아 대기업 근로자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합니다. 교섭력이 있는 대기업이 임금인상 가능성도 훨씬 높기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규정이라는 거죠.
정부로서도 대기업 근로자에게 더 혜택이 많이 돌아간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에 한해서는 세액공제율을 5%로 낮췄는데요. 그래도 일용직·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임금 인상에 대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 Round3 : 가업승계 도와주기
장수기업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가업승계 상속공제 제도는 내년부터 매출액 기준이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확대됩니다. 매출 3000억~5000억원 사이의 중견기업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해준 것입니다.
정부는 중견기업의 가업 승계가 앞으로 더 빈번히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이 크면 승계 후 경영 유지가 어려워져 회사를 매각할까봐 걱정입니다.
경실련의 시각은 다릅니다. 그동안 가업승계에 대한 상속세 공제를 너무 많이 퍼줬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가업상속 공제 한도는 2007년 1억원에서 2008년 30억원으로 급격히 늘었고, 이후 100억원(2009년), 300억원(2012년)으로 상승하더니 올해부터 500억원으로 더 올라갔습니다.
공제율도 2008년 20% 수준에서 올해 100%로 높아졌는데요. 가업 상속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6~7년 사이 수백억원의 상속세 부담을 덜게 된 것입니다. 장수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이 너무 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Round4 : 서민 주머니 털기
최근에는 부자 감세보다 더 강력한 아이템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서민 증세'인데요. 대선 과정에서 '증세없는 복지'를 국민에게 약속하고, 임기 내에 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온 박근혜 정부에서 불과 1년 만에 뒤통수를 친 모양새여서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들 수 있습니다. 담뱃세가 서민들의 세부담을 높인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추가로 매겨서 고가 담배일수록 세금 부담을 높였고, 세부담의 역진성(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세부담을 지게 되는 성향)도 완화했다는 설명이죠.
다른 지방세들도 1992년 이후 20년 넘게 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올릴 때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지방자치단체 재원은 점점 메말라가는데, 서민들의 목욕비도 안되는 주민세를 인상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실련에서는 담뱃세 인상으로 소득 하위 25% 흡연자가 상위 25% 흡연자보다 1778억원의 세금을 더 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습니다. 자동차세도 서민에게 1589억원의 세부담을 지게 하는데요. 이런 수치들을 근거로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서민 증세를 택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합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1일 "세수 확보를 위한 서민 증세라는 비판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담뱃값 인상은 국민 건강을 바로잡기 위함이고, 지방세 인상은 지자체의 주장을 중앙정부가 수용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도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증세 목적으로 담배 가격을 인상했다는 얘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정부 당국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증세가 맞을 수도 있지만, 의도가 다르기 때문에 너무 서민 증세로 몰아가지 말아달라는 뉘앙스입니다. 하지만 실제 서민들의 세부담이 늘어나는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명분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현실이 납세자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납세자들이 가진 세금 불만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