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세무서장들은 6월과 12월만 되면 수십명씩 얼굴이 바뀝니다. 정년을 채운 고참급 세무서장들이 명예퇴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는데요. 퇴직한 세무서장들은 대부분 세무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공직자윤리법에서 퇴직 후 3년간 로펌(법무법인)과 회계법인 취업을 막아놨기 때문에 대부분은 세무법인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세무사 사무소를 개업합니다. 이들이 새출발하는 곳은 십중팔구 자신이 근무하던 지역입니다.
10일 비즈니스워치가 지난 2년간 퇴직 후 세무사로 활동하는 세무서장 45명의 개업 장소를 분석한 결과, 38명(87%)이 직전 근무지 인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그래픽: 김용민 기자/kym5380@ |
◇ 동네 세무사로 컴백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명예퇴직한 세무서장은 56명입니다. 6월 말에 29명, 12월 말에 27명의 세무서장이 공직에서 물러났는데요. 이들 가운데 19명이 세무법인이나 개인 사무소를 통해 세무사로 개업했습니다.
지난해 개업한 세무서장 출신 세무사 19명 중 관내에서 개업한 인원은 15명으로 79%를 차지했습니다. 12월 강남세무서장에서 퇴직한 박영태 세무사는 태강세무회계사무소를 냈고, 김광삼 전 역삼세무서장은 가현택스 세무회계 예(禮)를 개업했습니다. 사무실 위치는 모두 강남입니다. 같은 시기에 퇴직한 신충호 전 용산세무서장은 서울 용산구 위치한 세무법인 세성에서 세무사로 활동합니다.
6월 말에 퇴직한 이영운 전 동대문세무서장과 임병호 전 서인천세무서장, 임채수 전 잠실세무서장, 전재원 전 강동세무서장은 나란히 '가현택스' 상호로 개인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이들의 개업장소도 퇴직 당시 세무서장으로 활동하던 지역입니다. 또 김봉옥(안양), 류효석(동안양), 민광선(성동), 이운창(동작), 정동주(부천), 조용을(중부), 한귀전(송파) 전 세무서장도 관내 세무사로 새출발했습니다.
세무법인 임원으로 영입된 세무서장들도 있는데요. 지난해 6월 퇴직한 황희곤 전 서초세무서장은 세무법인 다솔 부회장을 맡았고, 장경상 전 동수원세무서장과 장호강 전 영등포세무서장은 각각 예일세무법인과 이안세무법인의 대표 세무사로 취임했습니다.
◇ 전관예우 vs 개업지역 선택 자유
세무서장이 관내에서 세무사로 개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을 따내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나 개인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과 며칠 전까지 세무서장으로 근무했던 세무사는 최고의 절세 파트너가 됩니다. 과세 쟁점을 정확하게 파악할뿐 아니라 후배 직원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더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전관예우 논란을 낳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 세무서장의 최종 근무지 개업을 금지하는 방안을 국세청에 촉구했는데요. 당시 세무서장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서병수 의원 대표발의)도 나왔지만,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습니다.
국세공무원들 사이에선 세무사 개업 장소까지 규제하는 건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한 현직 세무서장은 "평생 세무 업무만 하던 공무원이 퇴직하면 세무사가 유일한 밥줄인데, 익숙한 동네에서 개업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요즘은 후배 공무원들이 전관예우라고 봐주는 풍토도 사라진 만큼 관내 개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국세청은 세무서장에 대한 전관예우 관행을 점차 개선한다는 방침입니다. 국세청은 "세무서장에 대한 취업제한 요건을 강화하고, 현직에 있을 때 개업을 의식한 행위를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독한다"고 밝혔는데요. 과연 20대 국회에서 세무서장들의 관내 개업에 대해 어떤 개선안이 나올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