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탈루를 막기 위해 세무사에게 신고내용을 재차 검증받도록 하는 성실신고확인제가 시행 6년만에 암초를 만났다. 제도를 규정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것이다.
세무사업계와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성모 세무사는 최근 성실신고확인제를 규정한 소득세법 제70조의2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소원을 제기해 심리중이다.
성 세무사는 성실신고확인제는 행정부가 해야할 신고검증 의무를 납세자와 세무사에게 전가시킨 행정편의주의적인 제도이며 헌법상 재산권을 제한하고, 직업수행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
# 처음부터 너무 뻔했던 문제들
성실신고확인제는 일정 소득 이상의 자영업자가 소득세 신고를 하기 전에 신고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를 세무사에게 먼저 확인받는 제도다.
그런데 규모가 있는 사업자는 대부분 장부 작성에서부터 소득세 신고와 세무조정 업무를 모두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에게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세무사가 작성해 준 장부와 신고서를 같은 세무사에게 확인해 달라고 하면서 수수료를 또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장부 정리를 해준 세무사가 아닌 다른 세무사에게 성실신고확인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미 세무대리 계약관계에 있는 세무사에게 맡기는 게 일반화 돼 있다.
사실상 '셀프검증'으로 부가적인 수수료 수입이 생기게 된 세무사들이지만 마냥 웃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검증이 완벽하지 않으면 세무사 자격정지 등의 징계를 받는데 수사나 조사권이 없는 세무사는 사업자가 주는 자료를 근거로 신고대리를 하기 때문에 강제로 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 따라서 사업자가 딴 마음을 먹으면 매출누락이나 증빙누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락여부는 국세청의 눈에 띄어야만 확인되지만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세무조사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세무사들은 언제든 징계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제도 설계 당시부터 제기됐다. 2010년 제도 도입 당시 납세자들은 특정 자영업자들만 탈세 집단으로 간주해 이중 부담을 지우는데 대해 반발했고, 세무사들은 징계 조항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이던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도 "아무리 목표가 좋아도 뒷받침하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면 나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탈세차단이라는 명분이 앞세워지면서 제도의 결함은 뒷전으로 밀렸다.
# 세무사들의 변심 그리고 부메랑
나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성실신고확인제가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사실 세무사들의 숨은 조력이 작용했다. 세무사들은 징계의 위험보다는 당장의 수수료 수익을 더 크게 봤고, 당초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성실신고확인제의 역사는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와대는 의사와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들의 탈세가 심각하고 이 과정에 사업자와 세무사 간의 '탈세동맹'이 작용하고 있다며 근절책을 강구중이었다.
그 즈음 세무사들은 신규 수익원을 만들기 위해 국세청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세무사가 대신하는 세무검증제라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청와대의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세무사들의 요구를 적절히 활용했다.
세무사가 세무검증을 하되 검증 내용이 불량하면 세무대리인에게 징계라는 책임을 묻겠다는 지금의 성실신고확인제를 고안한 것이다. 그리고 제도 시행 6년, 성실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는 세무사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올해 5월에 성실신고확인을 받아야 하는 사업자는 15만명에 달한다. 제도 도입 당시 4만명 수준이었지만 고소득 자영업자 기준이 확대되면서 대상자가 급증했다.
부동산임대업이나 교육서비스업, 전문직 사업자 등은 당초 연매출이 7억5000만원을 넘어야 성실신고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5억원 이상으로 낮아졌다. 정부는 성실신고 확인 대상을 앞으로 더 늘리겠다는 방침이어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 그래픽 : 변혜준 기자/jjun009@ |
# 신고당사자들 볼멘 목소리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미리 검증해야 하는 세무사들은 성실신고 확인제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세무사들에겐 수수료 수입이 늘어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자영업자의 탈세 사실이 적발되면 성실신고 도장을 찍어준 세무사들이 책임을 져야하므로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현재 성실신고 확인을 4건 진행하고 있다는 이모 세무사는 "성실신고를 잘못했다간 징계처분을 받기 때문에 수입금액 누락 부분이 없는지 더 꼼꼼하게 살펴본다"며 "일반 조정료보다 수수료를 더 받긴 하지만 귀찮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황모 세무사도 "성실신고 확인에 투입하는 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며 "새로운 먹거리인줄 알았는데 그냥 업무 부담만 더 늘어났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사업자들은 수수료에 대한 불만이 크다. 지난해 성실신고 확인을 받았던 한 사업자는 "종합소득세 신고 수수료로 380만원을 냈고 성실신고 확인에도 440만원이 들었다"며 "기장이나 세무조정, 성실신고 확인까지 다 비슷한 업무처럼 보이는데 수수료를 두 번 내야하는 게 말이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결국 성실신고 확인제가 세무사와 사업자 모두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동기 세무사고시회장은 "세무사는 회계감사처럼 자료를 다 받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매출 누락이나 허위증빙을 잡아내기 힘든 구조"라며 "세무사들은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성실신고 확인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실신고 확인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성모 세무사는 "성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추상적인데 이런 불확정한 개념을 조세법에 규정해 법적 안정성과 납세자의 예측가능성을 저해했다"며 "세무대리인은 질문이나 검사권도 없는데 그 자료를 바탕으로 징계라는 불이익한 처분까지 받아야 하고 납세자도 강제로 검증비용을 떠맡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