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업도 자리를 잡았으니 결혼합시다." (남자)
"당신을 사랑하지만 우리는 함께 갈 수 없어요." (여자)
충북 청주에서 안전용품 사업을 하던 김구호(가명)씨는 2000년대 초반까지 전도유망한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회사 부도로 거액의 빚을 진 김씨는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는데요. 살림이 어려워지자 아내와의 사이가 멀어졌고 그가 집을 나오면서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마땅한 주거지도 없이 방황하던 그는 2003년 한 여자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미모와 재력을 겸비한 이혼녀 이진주(가명)씨는 김씨의 듬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순식간에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김씨는 이씨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살갑게 챙기며 아빠 역할까지 도맡았죠. 두 사람은 주변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다정한 부부처럼 지냈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김씨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파트 임대사업을 함께 시작해보자고 제안했고 이씨도 모아둔 자금을 흔쾌히 내놨습니다. 신용불량자였던 김씨를 대신해 이씨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했고, 2004년 2월 광주지역의 주공아파트 2채를 매입하면서 주택 임대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의 임대사업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른바 '갭투자'를 통해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은 아파트를 사들였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시세차익도 누릴 수 있었죠. 갭투자로 남긴 차익과 대출을 통해 전국 각지의 아파트를 꾸준히 매입했는데요. 그들은 임대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259채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사업이 잘 풀리자 이씨의 가족들은 김씨를 더욱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씨의 친정어머니는 그를 '김서방'이라고 불렀고, 아들은 김씨와 유럽 여행까지 다녀왔습니다. 이씨는 김씨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면서 '앞으로도 더 사이좋게 지내자'는 편지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씨가 그해 3월 이씨에게 청혼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시큰둥했는데요. 사업상 도움을 준 것은 고맙지만 본처가 있는 유부남과 결혼할 순 없다는 이유였죠. 그녀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김씨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내연녀에게 버림받은 김씨는 이씨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습니다. 임대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했으니 자신의 몫을 떼어달라는 것이었죠. 결국 김씨는 청주지방법원에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이씨가 소유한 아파트 10채를 받아냈습니다.
한편 이씨는 임대사업 규모를 줄이면서 아파트를 꾸준히 처분했는데요. 2014년까지 120채를 팔면서 시세차익도 얻었죠. 일부 아파트를 팔고 남긴 차익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납부했지만,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쓰거나 임대소득에 대한 신고를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이씨의 탈세 행각은 지난해 12월 국세청의 세무조사에서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국세청은 이씨의 양도세 과소신고와 종합소득세 신고누락 사실을 발견하고 세금을 추징했는데요. 공동사업자였던 김씨에게도 양도세와 종소세의 절반을 납부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세금 통지서를 받은 김씨는 국세청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자신은 공동사업자가 아니라 사실혼 관계로 이씨의 임대사업을 도와줬을 뿐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국세청은 이미 법적으로 본처가 따로 있는 김씨가 이씨와 사실혼 관계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조세심판원도 김씨의 불복 심판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심판원은 "김씨가 아파트의 일부를 넘겨받은 사실은 이미 주택임대업에서 발생한 수익을 분배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며 "공동으로 임대업을 영위한 것으로 보고 종소세와 양도세를 과세한 처분에 대해 잘못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동사업의 소득계산
사업을 공동으로 경영하면서 발생한 소득금액은 약정한 손익분배비율에 따라 공동사업자별로 배분한다. 만약 약정한 손익분배비율이 없는 경우에는 지분비율에 의해 소득금액을 나눈다. 국세청은 김씨와 이씨의 주택임대업 지분을 50 대 50으로 보고, 소득금액을 분배해 소득세를 절반씩 추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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