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간호사, 마누라와 이혼할테니 조금만 기다려줘." (남자)
"더 이상은 못참겠어요. 병원부터 먼저 개업해요." (내연녀)
서울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박모씨는 1984년 최모씨와 결혼해 아이 셋을 낳았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야근도 많고 가정에 소홀했던 터라 그의 아내는 홀로 세 자녀의 양육을 책임져야 했는데요.
그래도 남편이 챙겨다주는 두둑한 월급봉투와 시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누렸죠. 하지만 남편은 결혼 10년차를 넘기면서부터 외박이 잦아졌고 학회 세미나를 핑계로 지방이나 외국 출장도 많아졌습니다.
가끔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바람이라도 난 게 아니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그럴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으며 받아넘겼습니다.
▲ 그래픽/변혜준 기자 jjun009@ |
그러나 아내에게 천사같은 얼굴로 미소짓던 남편에겐 몰래 만나온 애인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니던 병원의 간호사와 오래 전부터 내연관계를 유지해 온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내연녀에게 더 애정을 쏟았고 급기야 본처와 이혼할 결심까지 하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찾아와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내연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이혼해달라고 요구했죠. 아내는 자신과 가족을 배신한 남편에게 절대로 이혼은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아예 집을 나와서 내연녀와 동거를 시작했는데요. 아내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전재산을 주고, 자녀들의 양육비까지 책임지겠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아내를 들볶았죠. 더 이상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한 아내는 각서를 받고 이혼 절차를 밟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각서를 쓰기가 무섭게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내연녀와 함게 개인병원을 개업했습니다. 이미 전재산을 아내에게 넘겨준 상태여서 남편은 신용대출을 받고, 내연녀가 모아둔 쌈짓돈까지 보태야 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전재산을 받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버틴 겁니다. 이혼도 못하고 경제적인 문제로 마음고생을 하던 남편은 자살 소동까지 벌였는데요. 남편의 성화를 못 이긴 아내는 결국 이혼 도장을 찍어줍니다.
남편은 2000년 정식으로 이혼한 후 한 달 만에 내연녀와 혼인하고 새살림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이때부터 손 대는 일마다 꼬였는데요. 2003년과 2008년에 두 차례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됐죠.
재혼녀는 남편을 대신해 병원 경영에 나섰는데요. 의사를 직접 고용하고 제약회사와의 거래도 도맡았습니다. 그녀의 악착같은 노력으로 병원 사정은 나아졌지만 남편은 사고 후유증으로 찾아온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201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혼녀는 남편이 남긴 병원을 물려 받고 상속세까지 납부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은 상속세 조사를 벌이다가 지난해 4월 그녀에게 증여세를 추징했습니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 그녀의 계좌로 입금된 금액을 사전증여재산으로 본 겁니다. 그녀는 부부가 함께 모은 재산에 세금을 내라는 국세청의 처분을 이해할 수 없었고, 지난해 7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조세심판원은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의료법상 의사만 개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가 공동으로 경영했다는 사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죠. 그녀는 병원을 개원할 때 자금을 출자했다는 증빙도 제출하지 못하면서 국세청의 과세를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심판원은 "동업을 약정했더라도 일반인이 병원을 개업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병원 경영과 관련해 얻은 이익이나 재산은 모두 원장(남편)에게 귀속된다"며 "사전증여재산으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한 처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전증여 재산 과세 규정
상속재산을 계산할 때는 상속개시일(사망일) 전 10년 이내에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도 합산한다. 상속인이 아닌 사람이 증여 받는 경우에는 상속개시일 5년 이내 증여한 재산가액을 가산한다. 이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재산의 일부를 생전에 미리 증여하는 편법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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