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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경제학]②언택트 소비…외식산업 어쩌나

  • 2020.03.19(목) 09:21

라면·즉석밥 등 간편한 비상식량 매출 급증
'외식 수요'는 가정간편식이나 배달로 해결
"외식 산업 부진 폭 클 것" 우려의 목소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가장 중요한 대응법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입니다. 그러려면 '방콕'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개학도 미뤄지면서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이 많아졌습니다. 가족이 함께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방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낯선 일상은 우리의 소비 패턴을 확 바꾸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강제 방콕'의 일상과 이에 따른 국내 유통·식품 산업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뭐 먹지? 나는 그냥 라면 먹을래. 그럼 나도 라면. 계란이랑 만두도 넣을까? 부부는 요즘 부쩍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매 끼니를 만들어 먹겠습니까. 쌀을 씻고 야채를 썰고 육수를 우리고. 게다가 설거지까지. 생각만 해도 피곤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때는 라면을 넉넉히 사두는 게 좋습니다. 냄비를 꺼내서 끓이는 것조차 귀찮을 때를 대비해 컵라면도 조금 쌓아두고요.

라면은 요즘과 같은 때 가장 먼저 사둬야 하는 대표적인 '비상식량'으로 여겨집니다. 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졌던 대구·경북 지역 등에서 라면 사재기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고요. 전국적으로도 라면 소비가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달 20일부터 26일까지 라면 매출은 전년보다 75% 늘었다고 합니다. 라면을 한 번에 구매하는 금액도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마케팅 컨설팅 기업 칸타에 따르면 올해 1~2월 봉지 라면 구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5% 늘었다고 합니다. 라면을 '비축용'으로 구매하고 있다는 겁니다.

라면업체들도 분주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등은 말 그대로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업체는 계획했던 신제품 출시도 미뤘다고 합니다. 높아진 수요에 맞춰 기존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게 지금은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라면뿐이겠습니까. 이럴 때 유용한 대표적인 비상식량 또 있습니다. 즉석밥입니다. 라면으로는 부족해 밥을 말아먹어야겠는데, 굳이 쌀을 씻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즉석밥을 돌려먹으면 됩니다. 즉석밥 매출도 빠르게 늘었습니다. 티몬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즉석밥 매출은 전년보다 무려 151% 증가했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홈플러스에서도 즉석밥 매출이 46% 늘었다고 하고요.

그런데 부모들은 라면이나 즉석밥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까지 계속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물론 스스로도 라면이나 즉석밥만 먹기에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바로 HMR(Home Meal Replacement), 즉 가정간편식입니다. 가정간편식은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집에서 그럴듯한 메뉴를 차려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갈비곰탕이나 해물짬뽕전골, 밀푀유나베 등 외식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을 간편하게 식탁 위에 올릴 수 있습니다. 실제 요리는 안 했지만 눈 한 번 딱 감고 아이에게 '오늘은 내가 요리사'라고 외쳐볼 만합니다.

사실 가정간편식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빠르게 성장한 제품군입니다. 요리가 취미인 분들은 집에서 짬뽕도 해보고 곰탕도 만들어보며 즐거움을 느낄 겁니다. 그러나 '생계형 요리' 위주로 하게 되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미역국, 계란말이 같은 흔하디흔한 메뉴에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가정간편식은 이런 소비자들이 찾기 시작한 제품입니다.

GS25에 따르면 올해 가정간편식 매출은 지난해보다 39.4% 늘었다고 합니다. GS25의 가정간편식 매출은 이미 지난해와 2017년에 각각  60.3%, 67.2% 증가한 바 있는데요. 여전히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가정간편식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긴 하지만 아직 전체 음식료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는데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정간편식에 대한 수요가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입니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가정간편식에 대한 신규 고객 유입과 구매량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품질 향상과 편리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런데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걱정이 커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외식업에 종사하는 분들인데요. 많은 이들이 '강제'로 외식을 끊다 보니 식당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외식업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후 6주간 국내 음식점의 일 평균 고객은 평균 65.8% 급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식품업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주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팔고 있는 업체들은 매출이 늘고 있지만 외식업체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들의 경우 어려움에 처한 겁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외식업자들이 의지할 것은 바로 '배달'뿐입니다. 실제로 주말이면 늘 하던 외식 대신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최근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같은 배달 전문 업체 이용 건수가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배달의 민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8일까지 자사 주문 수는 2주 전(2월 10~2월 23일)보다 8.4% 증가했다고 합니다.

다만 방문 고객이 늘지 않는 이상 외식업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조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방문 외식의 매출 공백을 배달로 일부 상쇄할 수 있긴 하지만 소비자들이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면서 배달 수요 역시 감소하고 있어 부진의 폭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언택트 소비'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니 소비도 그렇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장도 온라인으로 보고, 외식도 배달을 통해 먹습니다. 게다가 배달조차 꺼리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주목할만한 점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이미 이런 트렌드가 확산하는 분위기였다는 사실입니다. 한동안 '혼밥'이 우리 사회의 이슈였던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혼밥도 좋고 집에서 가족끼리만 모여서 '홈(Home)밥'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사람들과 만나서 식사를 했던 것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또 다른 기쁨 아니겠습니까.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택트 소비'가 이 틈을 타고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버리는 게 아닐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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