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정혜인 기자] 상하이 난징시루 한복판에 자리한 '플라자66'은 중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하이엔드 쇼핑몰이다. 루이비통·샤넬·카르티에·셀린느·구찌·에르메스 등 100여 개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5개 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반 쇼핑몰이라면 한 층쯤은 스포츠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채우기 마련이지만 플라자66은 다르다. 어느 층에 올라가도 명품 브랜드뿐이다. 쇼핑몰 안 카페조차 LVMH 계열 브랜드가 운영한다. 그만큼 중국 본토에서 최고급 소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지난해 여름 이곳 4층에 '지포어(G/FORE)'가 입점했을 때 중국 패션·리테일업계가 주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 기획한 골프웨어 브랜드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기 때문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코오롱FnC)이 미국 지포어 본사로부터 중국 독점 라이선스를 따낸 지 약 반년 만의 일이다.
골프까지 성장하는 중국
코오롱FnC가 지포어를 들고 중국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건 지난 2024년. 코오롱FnC는 2021년 지포어의 국내 라이선스를 획득해 2년 만에 연매출 1000억원으로 성장시켰다. 이 성과를 눈여겨본 미국 본사가 2024년 11월 중국 독점 라이선스를 코오롱FnC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코오롱FnC가 지포어의 다음 무대로 중국을 택한 건 시장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골프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은 고급 스포츠지만 저변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한 골프 전문 매체에 따르면 25~35세 골프 인구는 2021년 10만명에서 2025년 100만명으로 4년 만에 10배 늘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골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골프웨어 시장의 성장세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는 뚜렷한 경쟁 골프웨어 브랜드가 없다는 점도 코오롱FnC에게는 기회였다. 한국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골프웨어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지만 중국에는 소비자들이 떠올릴 만한 전문 골프웨어 브랜드 자체가 드물다.
특히 골프웨어가 중국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도 코오롱FnC에게는 기회였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골프웨어는 로고를 과시하는 명품을 대신해 '올드 머니', '콰이어트 럭셔리'와 같은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패션 코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골프를 치지 않아도 골프웨어를 일상복으로 소화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코오롱FnC가 한국에서 지포어로 검증한 '럭셔리 골프웨어' 전략이 중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유다.
이에 코오롱FnC는 지포어를 중국에서 럭셔리 골프웨어로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데 집중했다. 이전에도 지포어 용품 일부가 중국 골프장 내 멀티 브랜드숍에서 판매되고 있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는 약했다. 코오롱FnC는 한국에서 35~44세 '영앤리치' 고객을 타깃으로 소수의 핵심 매장만 운영하는 식의 럭셔리 브랜딩 전략을 중국에도 그대로 이식했다.
골프관 대신 명품관
코오롱FnC가 중국 지포어 매장을 낼 때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입지 선정이었다. 한국은 백화점이나 쇼핑몰 안에 골프 전문 조닝이 별도로 형성돼 있어 골프웨어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쇼핑몰 내에 골프 조닝이 없다. 지포어 입장에서는 어느 조닝에 입점하느냐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었다. 코오롱FnC는 지포어를 럭셔리 브랜드로 인식시키기 위해 럭셔리 조닝에 입점시키는 데 집중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중국 심천에 연 지포어 1호점은 심천 프리미엄 쇼핑몰 MIXC의 럭셔리 조닝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럭셔리 고객들이 지포어를 실제로 구매할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매장을 열고 보니 예상보다 더 좋은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코오롱FnC 중국법인 관계자는 "골프 목적이 아닌 일상복으로 구매하려는 고객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며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포츠 조닝이 아닌 럭셔리 조닝 입점을 기본 원칙으로 확립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플라자66에 입점한 것도 지포어가 중국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오롱FnC는 이 매장에서도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전체적인 톤앤매너는 한국 매장과 동일하게 유지하되 중국 고객 특성에 맞게 손을 댔다. 한국 고객보다 매장 체류 시간이 긴 중국 프리미엄 고객들을 위해 휴게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매장 외부에는 지포어 로고를 더 크고 선명하게 노출하도록 중국 특화 디자인을 적용했다. 고가 브랜드에 익숙한 고객들에게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직원 전원을 럭셔리 브랜드 출신으로 채웠다.
지포어의 상품 구성도 중국 시장에 맞게 조정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한국·일본과 동일하게 유지하되 색상과 소재는 현지화했다. 중국의 다른 골프 브랜드들이 그레이·블랙·화이트 중심인 것과 달리, 지포어는 선명하고 화려한 컬러를 내세운다. 여기에 쿨링 소재와 자외선 차단 기능을 더한 의류로 실용적인 것을 원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니즈도 잡았다.
중국 전역으로
이런 전략을 바탕으로 지포어는 중국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코오롱FnC 중국법인 관계자는 "플라자66는 럭셔리 브랜드 비중이 높아 방문객 수가 아주 많지 않은 쇼핑몰이지만 구매율과 객단가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플라자66 측에서도 지포어의 높은 평당 효율을 인정할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지포어의 중국 시장 내 핵심 고객층은 35~45세다. 남녀 비중은 5대 5로 고른 편이다. 구매 고객의 70% 이상은 골프를 즐기는 고객이지만 의류 구매자의 절반 이상은 골프웨어를 일상복으로도 착용한다. 지포어가 중국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들에게 골프웨어를 넘어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코오롱FnC 중국법인 관계자는 "중국 고객들은 예전에 로고만 보고 브랜드를 샀지만 지금은 이 옷을 왜 사는지 이유가 있어야만 구매를 한다"며 "골프라는 운동을 하기 위해 기능성 의류가 필요한 동시에 일상에서도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지포어의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지포어는 중국 내 인지도 제고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온·오프라인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샤오홍슈·위챗 공식 계정을 운영하며 인플루언서·셀럽과 협업해 지포어의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쌓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청두 IFS와 플라자66 등 최고급 쇼핑몰에서 팝업 행사를 열고 있다. 또 아시아 최대 골프 연습장인 플레이골프클럽에서 VIP 전용 행사도 진행했다.
코오롱FnC는 지포어를 중국 대표 럭셔리 골프웨어로 계속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향후 3년 안에 항저우·난징·광저우 등 중국 1선·신1선 도시의 핵심 프리미엄 쇼핑몰로 유통망을 확대하기로 했다.
코오롱FnC 중국법인 관계자는 "올해는 브랜드 기반을 강화하고 내년부터 지금보다 훨씬 큰 성장을 이뤄낼 것"이라면서 "소비자가 스포츠 럭셔리 브랜드를 떠올릴 때 지포어를 먼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