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스낵을 먹는 법은 정해져 있습니다. 맥주나 우유를 곁들이면 더 맛있는 제품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스낵은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먹습니다. 그런데 죠리퐁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먹는지 콕 찝어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죠리퐁처럼 오랫동안 팔린 제품 중 이런 제품은 드뭅니다. 있더라도 '괴식'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고요.
실제로 죠리퐁을 먹는 방법은 시간이 흐르며 변해왔습니다. 죠리퐁은 원래 '한국형 씨리얼'로 기획된 제품이었습니다. 시장에 자리를 잡은 후 한동안은 보통 스낵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라떼나 쉐이크 등의 재료로도 자주 쓰입니다. 이미지가 고정돼 있는 장수 제품이 이렇게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마케팅의 힘'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죠리퐁이 출시된 1972년 국내 스낵 시장은 단순했습니다. 전병·뻥튀기같은 길거리 과자가 주요 상품이었죠. 이들은 '크기'와 '깨끗함'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한 봉지에 담겨 유통됐습니다. 브랜드 스낵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죠리퐁보다 1년 빨리 출시된 '새우깡'이나 수년 뒤 출시된 '오징어땅콩'의 초기 봉지도 투명했었죠.
반면 최초의 죠리퐁은 불투명 원색 봉지에 담겨있었습니다. 봉지 표면에는 스페이드 무늬가 큼직하게 인쇄됐고요. 뻥튀기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크기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습니다. 색상은 거뭇거뭇했고요. 여기에 가격까지 기존 스낵보다 비쌌습니다. 시장을 뚫어야 할 신제품이라 하기는 파격적인 모습이었죠. 때문에 출시 초기 죠리퐁은 외면받게 됩니다.
크라운제과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죠리퐁을 '고급 씨리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죠리퐁의 첫 유통 거점을 용산 미군기지로 정한 것도 이를 위해서였죠. 당시 수입품이 엄청나게 비쌌던 만큼, 국내 기준으로는 비싼 죠리퐁이 미군에게 '가성비 제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겨냥했습니다. 이 전략은 보기좋게 맞아떨어집니다. 죠리퐁은 미군과 그 가족에게 날개돋힌 듯 팔려나갑니다. 이에 힘입어 얼마 후에는 유통망이 확장됩니다.
그러자 특이한 구성과 패키징은 '신의 한 수'가 됩니다. 1970년대 한국인의 선진국 동경은 대단했습니다. 죠리퐁은 미군이 좋아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끌 수 있었죠. 이런 가운데 죠리퐁의 생김새마저 남달랐던 겁니다. 자연스럽게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형성됐고, 높은 가격에도 설득력이 생겼죠. 죠리퐁은 프리미엄 스낵 시장을 개척하며 베스트셀러로 올라섭니다. 뚝심과 확신이 담긴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대를 넓혀 '원조'를 이기다
죠리퐁은 1980년대 후반 강적을 만납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서구식 식생활도 널리 퍼집니다. 죠리퐁의 '원형'이 씨리얼도 이 즈음 국내에 상륙합니다. 1988년 농심이 켈로그와 손잡고 '콘푸로스트'를, 얼마 후 동서식품이 '콘푸라이트'를 출시했죠. '첵스'같은 다양한 씨리얼들도 쏟아집니다. 국내 씨리얼류 시장에서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던 '터줏대감' 죠리퐁에게는 위기였죠.
당시 크라운제과는 정면돌파를 택합니다. 1995년부터 제품에 '종이스푼'을 넣었습니다. 우유에 말아먹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살리면서, 편의성은 차별화하려는 시도였죠. 이 전략은 의외의 효과를 냅니다. 소비자는 죠리퐁을 그냥 먹을 때도 스푼을 썼습니다. 누군가는 '포켓몬 스티커'처럼 스푼을 모으기도 했고요. 죠리퐁이 놀이의 대상으로 다시금 주목받게 된 셈입니다. 그러면서 씨리얼이라는 정체성도 자연스럽게 지켜졌고요.
고객 저변 확장에도 집중합니다. 크라운제과는 1998년 죠리퐁에 마시멜로와 다양한 곡물을 버무린 '와글와글'을 선보입니다. 이 제품에는 특유의 캐릭터가 나오는 TV광고와 아이들 대상의 다양한 이벤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통합마케팅전략'이 적용됐습니다. 그 결과 죠리퐁은 유소년층을 새 주력 고객으로 확보합니다. 같은 해 씨리얼과의 경쟁에도 누적 매출 3000억원을 넘기기도 했고요.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스테디셀러'로 변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려놓기'로 세월을 뛰어넘다
죠리퐁은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곡물을 달게 만든다는 스낵의 '기본기'에는 충실했지만, 초코파이·새우깡같은 '독자 영역'은 사실 없었으니까요. 때문에 죠리퐁은 씨리얼·스낵 시장에 참신한 신제품의 출시가 이어지자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중장년층이 주로 찾는 '오래된 과자'로 전락했죠. 죠리퐁의 매출은 2014년 이후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2016년에는 한동안 지켜왔던 연매출 200억원도 무너졌고요.
죠리퐁은 이종 산업·상품과 협업하는 '크로스 마케팅'에서 활로를 찾습니다. 정체성이 확고한 장수 제품에게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죠. 2017년 커피 브랜드 쟈뎅과 협업한 '죠리퐁 카페라떼'가 출시됩니다. 당시 온라인에서 유행했던 레시피를 적용해 제품화했죠. 이 제품이 히트하면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한식 레스토랑 자연별곡이 죠리퐁 빙수를 선보이는 등 비슷한 콜라보 시도가 이어졌죠. 죠리퐁은 '재료'라는 새로운 쓰임새를 찾게 됐습니다.
동시에 '선한 마케팅'도 빛을 발합니다. 크라운제과는 2016년 '희망과자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국내 식품업계 최초로 패키지에 실종 아동의 정보를 담았죠. 이 프로젝트는 52년만의 가족 상봉을 이끌어내며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받게 됩니다.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높은 젊은 소비자들이 죠리퐁을 다시 한 번 주목하는 계기였습니다. 내려만 가던 매출이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죠.
죠리퐁의 오늘도 변신하고 있습니다. 크라운제과는 2019년 배스킨라빈스와 손잡고 죠리퐁 아이스크림을 내놨습니다. 지난해에는 국순당과 함께 '국순당 쌀 죠리퐁당'이라는 막걸리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죠. 그 사이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죠리팡 뮤즐리'도 시장에 자리잡았습니다. 죠리퐁의 변신은 어디까지 계속될까요.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죠리퐁의 마케터에게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끊임 없는 변화로 위기 넘어설 것"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크라운제과에서 죠리퐁을 마케팅하고 있는 김민아 과장입니다.
-출시 당시 죠리퐁은 패키지도 이질적이고, 가격까지 비싼 제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패키지 디자인에는 '한국 최초의 씨리얼'이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최고'이자 '유일함'을 알리려는 시도이기도 했고요. 이에 걸맞는 품질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죠리퐁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크라운제과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담긴 바삭한 식감이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죠리퐁에 숟가락이 들어간 1995년에는 이미 씨리얼이 대중화돼 있었습니다. 죠리퐁은 일반 스낵으로도 잘 팔리고 있었고요. 그럼에도 굳이 숟가락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마케팅 차원의 효과는 있었을까요.
▲우유에 타먹으면 더 맛있다는 점을 강조해 씨리얼과 경쟁하려 했습니다. 또 손에 묻는 불편함도 덜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기능도 고려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취지와 달리 숟가락이 재미 요소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디자인의 스푼을 제공해 수집욕을 자극하는 등의 시도를 이어가면서 재미 요소도 극대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죠리퐁 와글와글 출시 이후 아이들에게 집중한 차별화 마케팅을 다양한 채널에서 전개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스낵 시장에서 여러 채널을 동원하는 마케팅이 흔치 않았는데요. 공격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죠리퐁은 당시에도 식이섬유와 비타민 등 영양성분이 풍부한 점을 어필했습니다. 덕분에 어린이 영양간식으로도 사랑받아왔죠.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더욱 소통하면서 제품의 특장점을 알리려 했습니다. 와글와글도 이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상품이었고요. 공모전과 같은 다양한 행사는 이런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기획됐던 것입니다. 지금도 비슷한 마케팅 행사가 이어지고 있고요.
-스테디셀러 스낵 중 이종 제품군과 협업한 사례가 많지는 않습니다. 기존 정체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죠리퐁은 서슴없이 콜라보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제품은 항상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하고요. 이것이 가능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죠리퐁은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원래부터 우유와 함께 즐기는 씨리얼로도 사랑받아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이브리드 제품인 셈인데요. 그러다 보니 다른 제품들에 비해 죠리퐁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소비자들의 연구도 활발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100여개의 '꿀조합 레시피'가 탄생하기도 했고요. 이런 관심 덕분에 부담 없이 콜라보 마케팅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수 브랜드를 마케팅한다는 것은 담당자에게 큰 부담일 것 같습니다. 죠리퐁을 마케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과,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한 본인만의 노하우를 소개해 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물론 '희망과자 프로젝트'입니다. 우리 과자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용기와 사랑을 전달할 수 있어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이런 성과가 부담감 속에서도 재미를 느끼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업무를 통해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SNS에 올라온 레시피를 따라해보고, 모두 맛보면서요. 이와 함께 전국 핫플레이스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도 재미있는 업무입니다.
-죠리퐁이 반전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전체 스낵 시장이 과거보다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죠리퐁의 미래 전략에 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앞으로는 최초의 한국형 씨리얼이라는 독보적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죠리퐁만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아울러 젊은 세대에게는 죠리퐁을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재미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리겠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식이섬유 등 영양이 풍부한 점을 강점 삼아, 한끼 대용식으로도 죠리퐁이 충분하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건강 스낵'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