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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그땐 몰랐으니까" 롯데칠성의 '내로남불'

  • 2022.09.05(월) 07:20

롯데칠성, '투명병 소주' 출시
'진로이즈백' 출시 당시 맹비난
투명병 인기에 결국 고개 숙여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롯데칠성음료가 지난 1일 신제품 소주 '처음처럼 새로'를 내놨습니다. 처음처럼 새로는 16도의 저도수에 과당을 넣지 않은 '제로 슈거'가 콘셉트인 소주입니다. 최근 과당 대신 대체당을 사용한 '제로 탄산'이 롯데칠성의 실적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합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하나 더 있습니다. 소주 하면 떠오르는 녹색병이 아닌 '투명병'을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롯데칠성은 앞서 청하의 신제품 '별빛청하'를 내놓으며 투명한 병을 사용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소주 제품에 투명병을 도입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투명병은 속이 잘 보이고 깨끗한 느낌을 줍니다. 기존 소주병에 비해 세련된 느낌도 있네요. 아무래도 소주 하면 녹색병부터 떠오르다보니 녹색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뭔가 신제품 같고 트렌디해 보이기도 합니다. 맥주 시장에서도 업계 1위 오비맥주가 카스를 리뉴얼하며 투명병을 도입했죠. 이를 통해 이미지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았고요.

롯데칠성의 신제품 소주 '처음처럼 새로'./사진제공=롯데칠성

녹색을 버린 소주의 효과도 이미 검증됐습니다. 하이트진로의 진로(진로이즈백)가 대표적입니다. 진로이즈백은 2019년 4월 출시된 하이트진로의 새 소주 브랜드입니다. 녹색병 대신 80년대 이전까지 주로 쓰이던 투명한 병을 도입해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진로이즈백 출시 전 50% 초반이었던 하이트진로의 소주 점유율은 이제 60%를 웃돕니다. 진로이즈백이 점유율을 10%포인트 이상 끌어올렸다는 의미입니다. 진로이즈백은 지난 1분기 기준 판매량이 10억병을 돌파했습니다. 당초 레트로 트렌드를 타고 틈새 시장 공략을 노렸던 제품인데, 틈새 공략 정도가 아니라 업계 2위 '처음처럼'을 위협하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경쟁사에서 눈에 띄는 제품이 나오면 곧바로 '미투 제품'이 나오는 게 이 시장의 섭리입니다. 하지만 롯데칠성은 진로이즈백이 3년간 독주한 후에야 '처음처럼 새로'를 내놨죠. 단순히 대응이 늦은 걸까요. 아니면 투명병 트렌드가 금세 지나갈 거라고 판단했을까요. 시계를 진로이즈백 출시 직후인 2019년으로 되돌려 봅니다.

2019년 여름 롯데칠성(당시 롯데칠성 주류부문)은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이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녹색병이 아니기 때문이었죠. 지난 2009년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등 주요 소주사들은 환경부와 '소주 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습니다. 소주병을 통일해 회수·세척 후 재사용 시 편의성을 높이자는 의도에서였죠. 어느 브랜드의 공병을 수거하든 세척 후 라벨만 붙여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녹색병' 규칙을 깬 진로이즈백이 반 년만에 1억병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자 업계 2위 롯데주류가 '태클'을 걸었습니다. 수거한 빈 병 400만개를 공장 앞마당에 쌓아두기도 했습니다. 기존에는 빈 병을 수거하는 데 큰 노력이 들지 않았지만 진로이즈백 병은 따로 선별한 뒤 하이트진로로 보내줘야 하는 게 문제였죠.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롯데주류 측은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가 자율협약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판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자율' 협약이라는 점을 강조했죠. 참이슬은 여전히 '녹색병'이라는 점도 짚었습니다. 다른 지방 소주 업체들도 비표준 병에 담긴 제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선별 수거 비용 역시 자신들도 롯데주류의 청하를 따로 선별 수거해 돌려주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양 사의 대립은 롯데주류가 하이트진로에 빈 병을 돌려주고, 이듬해 여름 빈 병 교환 수수료를 기존 10.5원에서 17.2원으로 올리면서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한라산소주, 무학, 보해양조 등 다른 소주 제조사들에서 다양한 색깔의 소주병이 등장하면서 투명병 논란도 사그라들었죠. 하지만 이 논란을 주도했던 롯데주류로서는 자신들이 투명병 제품을 내놓기엔 거리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투명병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4월 롯데칠성이 신제품 '별빛 청하'를 내놓으면서입니다. 롯데칠성이 이 제품에 투명병을 도입했기 때문이죠. 물론 청하는 소주가 아닌 청주입니다. 별빛 청하는 청주에 와인을 넣은 기타주류로 분류됩니다. 비표준병 협약 대상이 아닙니다. 롯데칠성도 "소주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병 모양이 다르면 재활용이 어렵다고 주장했던 롯데칠성인 만큼 비판을 피하진 못했죠.

이번에 출시된 처음처럼 새로는 소주 제품인 만큼 이런 해명도 어렵습니다. 결국 친환경이라는 '대의'보다는 '대세'에 순응한 셈이 됐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해당 협약은 '자율협약'인 만큼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롯데칠성도 해당 문제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는 입장입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2019년 논란 이후 업체들 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고 이후 투명병 소주 출시에 문제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2019년 당시 가장 큰 목소리로 투명병 도입을 반대해왔던 롯데칠성인 만큼, 이제와서 은근슬쩍 투명병 제품을 내놓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5년 개봉한 '천만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 역을 맡은 이정재는 왜 동지를 팔았냐는 전지현의 질문에 "몰랐으니까. 해방될 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라고 말합니다. 당장의 현실만을 본 거죠. 어쩌면 롯데칠성도 그런 말이 하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몰랐으니까. 우리도 출시할지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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