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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그날이 왔다…흑자시대 연 쿠팡

  • 2022.11.14(월) 06:50

쿠팡, 3분기 흑자전환…2010년 창업 후 처음
경쟁사들 반격에 연간 흑자 달성은 미지수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지난 10일 쿠팡이 3분기 실적을 발표했죠. 실적 자료를 읽다가 문득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가 심훈 시인의 시 '그날이 오면'입니다. 심 시인은 독립의 날을 꿈꾸며 그 날이 오면 보신각 종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쿠팡 사람들이 흑자 전환을 기다리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구요. 지금까지 쿠팡이 들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10년 소셜커머스 사업으로 시작한 쿠팡은 지난 12년간 매년 적자를 내 왔습니다. 2014년, 사업을 이커머스로 전환하고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죠. 지난해까지 쿠팡의 누적 적자는 6조원에 달합니다. 당장 지난해에만 1조8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습니다.

이에 주변에서는 늘 "저러다가 곧 망할 것",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기업"이라는 비판이 맴돌았습니다. '실탄 부족설'도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본격적으로 물류센터를 짓기 시작하자 로켓배송은 흑자를 낼 수 없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업 구조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롯데, 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까지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자 이같은 시선은 더 강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쿠팡은 언제나 한결같은 입장을 내놨었습니다. "당장 흑자를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였죠. 수천억원씩 적자가 나고 있는데도 옳은 길로 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는 게 조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그러던 쿠팡이 드디어 꿈을 이뤘습니다. 지난 3분기에 처음으로 영업이익을 기록한 겁니다. 쿠팡은 지난 3분기 매출 6조8383억원, 영업이익 1037억원을 올렸습니다. 이미 지난 2분기에 조정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835억원을 기록하며 예열을 마쳤고 3분기엔 가시적 성과를 냈습니다. 모두가 망한다고 했던 쿠팡식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번 호실적이 더 눈에 띄는 건 아마존과 알리바바 등 쿠팡의 라이벌로 지목되는 글로벌 유통 기업들이 부진한 실적을 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존은 올해 상반기에 60억 달러 가까운 순손실을 냈습니다. 3분기에도 매출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습니다. 알리바바도 지난 8월 발표한 1분기 회계연도(4~6월) 매출액이 2055억50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0.09% 줄었습니다. 알리바바의 분기 매출이 감소한 것은 2014년 뉴욕 증시 상장 후 처음 있는 일이었죠. 

이 때문에 증시 전문가들도 쿠팡의 흑자전환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JP모건은 쿠팡이 3분기에 368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봤고 골드만삭스도 500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실제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웃돌았으니 업계 예상치보다 1500억원이나 많은 이익을 낸 셈이죠. 

/사진제공=쿠팡

쿠팡은 이번 흑자전환의 원동력을 '자동화된 물류 기술 구축'으로 꼽았습니다. 쿠팡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재고·발주를 최적화, 신선식품 재고 손실을 지난해보다 50%나 줄였습니다. 수 년 간 쌓아 온 고객 데이터에 기반해 수요를 예측하고 재고를 미리 물류 거점에 배치, 동선을 최적화하는 식입니다. 이 역시 지난 2년 동안 1조25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쌓은 인프라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물류 자동화·동선 효율화·재고발주 최적화 모두 쿠팡이 그간 꾸준히 이야기해오던 것들입니다. 그간 쿠팡의 적자는 대부분 대규모 투자가 원인이었습니다. 현재 쿠팡은 전국 30여개 지역에 100개가 넘는 물류센터와 신선센터, 배송캠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전체 규모만 370만㎡(112만평)가 넘습니다. 여의도보다 넓은 땅을 '로켓배송 거점 기지'로 쓰고 있는 셈입니다. 그간 '적자 기업'이란 오명을 감수하면서도 꾸준하게 배송 네트워크를 다져왔고, 이제 그 과실을 수확하기 시작한 거죠.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 물류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이커머스 물류산업의 본질은 자동화 물류 네트워크만으로 저절로 돌아가는 '플라이휠(flywheel)'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번 실적은 쿠팡만의 혁신적인 물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는 믿음이 결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호실적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물론 이제 쿠팡이 매 분기 꾸준하게 흑자를 늘려갈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완전한 흑자 구조가 정착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제 한 분기, 3개월 치의 성과일 뿐입니다. 쿠팡의 국내 소매시장 점유율도 7~8% 수준에 불과합니다. 

경쟁사들의 반격도 매섭습니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택배사인 CJ대한통운과 손잡고 '내일도착'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롯데는 '아마존의 유일한 대항마'로 불리는 영국의 오카도와 손잡았습니다. 오카도의 식료품 배송 시스템을 롯데에 이식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쿠팡 역시 첫 흑자에 만족할 리 없습니다. 당장 2024년까지 대전과 광주에 신규 물류센터를 지을 계획입니다. 좀 더 촘촘한 '쿠세권'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쿠팡이 예상보다 빠르게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앞으로의 유통 시장이 더 흥미진진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연간 흑자를 기록해 진짜 '흑자 기업'으로 발돋움할 지, 또다시 적자로 전환하며 '한순간의 꿈'이 될 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23년 유통업계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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