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대형 화재로 번진 불씨
지난 일주일은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로 들끓었습니다. 유통업계를 넘어 여행업계, 금융계까지 여파가 미쳤고 정치권에서도 이 사태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태의 시작은 '불쏘시개' 정도였습니다. 지난 10일쯤 인터넷 상에 올라온 몇 개의 게시글이 시발점이었는데요. 몇몇 위메프 입점업체들이 대금을 정산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위메프를 비롯해 큐텐 산하의 티몬이 최근 상품권을 너무 싼값에 팔아치우고 있다는 내용이 더해져 이 회사들의 '부도설'까지 돌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해프닝에 그치는 듯 했습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곧 정산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는 셀러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논란이 수습되지 않자 큐텐은 지난 17일 공식 입장문을 내놨습니다.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정산 시스템 오류가 났고 이달 말까지 지금 대급을 완료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이번주 들어 갑자기 이 대금 지연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티몬에서 지난 22일부터 여행상품이 대거 취소되면서였는데요. 정산금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자 여행사들이 티몬에서 판매된 호텔, 항공권 등의 결제를 취소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일부 판매자가 돈을 받지 못한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소비자 피해로까지 번지게 된 겁니다.
정산 지연이 환불 지연으로
이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티몬과 위메프 부도설이 돌던 차에 불안했던 고객들은 잇따라 환불 요구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결제를 대행하는 PG사가 티몬과 위메프에서의 결제와 환불을 막았습니다.
이 역시 티몬과 위메프에게 환불 대금을 받지 못할 우려 때문이었는데요. 소비자가 카드로 물건을 구매하면, PG사는 카드사에서 돈을 받아 티몬과 같은 플랫폼에게 넘겨줍니다. 환불은 거꾸로 플랫폼에게 돈을 받아 카드사에 넘겨주는 식입니다.
현재는 각종 페이, 카드사까지 모두 티몬과 위메프에서의 결제, 환불을 막았습니다. 이커머스에서 결제와 환불이 막혔다는 건 사실상 완전히 사업이 중단됐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회사가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한 시점이죠.
불안한 소비자들은 아예 티몬과 위메프 본사를 찾아가기에 이르렀습니다. 위메프가 지난 25일부터 먼저 현장에서 환불 접수를 시작했고 티몬도 26일부터는 환불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유보금으로 환불 자금을 조달했는데요. 여전히 많은 고객들은 이 유보금마저 모자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환불 시작이 결정된 소비자는 나은 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매자 대금 정산까지 이뤄지려면 한참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위메프로부터 보고 받은 내용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위메프에서 정산이 지연된 대금은 369억원 수준입니다.
다만 이 수치는 이달에 정산 받을 판매자, 즉 5월 판매분에 대한 정산금입니다. 6, 7월에 판매된 정산금을 포함하면 미정산 금액은 수치는 더욱 커집니다. 티몬까지 합치면 1500억원은 훌쩍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티메프에 입점한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입니다. 대금 정산이 조금만 미뤄져도 타격이 심각할 수 있습니다. '줄도산' 우려까지 커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돌려막기의 끝
이번 사태는 이커머스업계 특유의 긴 정산 주기와 허술한 대금 관리 때문에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산 주기는 이커머스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커머스는 정산금을 판매 건마다 바로바로 지급하는 대신 일정 기간마다 합쳐서 한꺼번에 지급합니다. 이 정산주기가 길다는 비판은 수년째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티몬과 위메프는 업계에서도 정산 주기가 긴 편에 속합니다. 티몬은 거래가 발생하면 그 달 마지막날 기준 40일 후에 정산금을 지급합니다. 위메프는 거래가 발생한 달의 익익월 7일에 정산을 합니다. 두 곳 모두 거래 후 대금 정산까지 40~70일 가량 소요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한 달 반에서 두 달 동안 티몬과 위메프는 이 돈을 어디에 사용할까요. 이전 판매자의 대금을 정산합니다. 이번달에 발생한 매출은 두달 전 거래된 판매자의 대금을 정산하는 데 씁니다. 두달 후 새롭게 발생한 매출을 이번달 거래된 판매자에게 주는 식이죠. 일종의 '돌려막기'인 셈입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최근 10년이 넘도록 폭발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각 업체의 거래액도 대부분 늘어났죠. 일반적으로 이달 거래액보다 다음달 거래액이 많을테니 정산에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티몬과 위메프에서는 이 정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큐텐은 플랫폼 고도화 과정에서의 오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티몬과 위메프 거래액이 줄었다는 점입니다. 티몬과 위메프는 한때 이커머스 시장에서 주목 받던 기업이지만 현재 점유율은 각각 한자릿수에 불과합니다. 신규 거래대금이 줄어들면 기존 거래대금을 정산할 수가 없겠죠.
자회사가 모기업 지원?
일각에서는 단순히 매출 감소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큐텐이 지난 2월 '위시'를 인수할 때 티몬과 위메프의 자금을 끌어다썼을 가능성인데요. 큐텐은 1억7300만달러(약 2300억원)에 위시를 사들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티몬과 위메프의 자금이 여기에 쓰이면서 갑자기 자금 흐름이 경색됐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큐텐의 무리한 확장이 티몬과 위메프를 망가뜨린 셈입니다.
티몬과 위메프가 환불, 대금 정산을 정상적으로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더 필요합니다. 현재 티몬과 위메프에게 환불과 정산을 위한 자금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위메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1억원에 불과합니다.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 보유액은 59억원입니다. 티몬은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2022년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은 80억원밖에 없었습니다. 단기금융상품은 1016억원 보유 중이었지만 대부분 사채상환 등 담보로 묶여있습니다. 물론 이는 2022년 말 수치이므로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죠.
어떻게든 환불과 대금 정산을 끝낸다 해도, 사업 정상화를 위해서 또 자금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모기업 큐텐의 지원이 절실할텐데요. 큐텐도 누적된 적자가 수천억에 달한다고 하니 계열사들을 도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티몬과 위메프가 다시 부활하기는 무척 어려워 보입니다. 이번 환불 불가 사태를 겪은 소비자들은 큐텐 계열사들을 이용하지 않을 겁니다. 판매자들 역시 대부분 큐텐그룹을 떠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커머스 시장을 이끌어왔던 1세대 기업들이 이렇게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이 있는 구영배 큐텐 대표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합니다. 이미 귀국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데요. 그를 대신해 많은 직원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구 대표가 직접 나서 소비자, 판매자의 불안을 잠재우고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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