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 안 됩니다
지난 24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종합감사에서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주성원 쿠팡 전무에게 '블랙컨슈머' 관련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이 의원은 "어느날 갑자기 블랙 컨슈머라며 이용을 제한하고 왜 이용이 제한됐는지 설명도 없다"며 "블랙 컨슈머가 된 이용자에게 소명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소비자가 문의를 해야만 양식을 보내준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의원은 "독점적 위치에서 갑질을 하면 안된다"며 쿠팡의 환불 제한 행위를 갑질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지난 8월 와우 멤버십 요금 인상과 연결짓기도 했죠. 구독 서비스는 사용자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갑자기 사용자를 블랙컨슈머로 몰아가면 안 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정론 그 자체입니다. 멤버십 구독료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고 서비스하는 쿠팡이 소비자의 권리인 환불을 마음대로 막다니, 연 수십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봐도 될 겁니다. 더군다나 쿠팡의 멤버십은 자유로운 환불이 최대 장점 중 하나라고 자랑하는 서비스입니다. 소비자 1인이 연 32회의 환불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핵심 서비스를 막아 버린거죠.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쿠팡의 반품·환불 정책은 정반대의 의미로 악명높습니다. 웬만하면 '묻지마 환불'을 해 주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다른 플랫폼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정책 때문에 다른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쿠팡 입장에서도 웬만하면 환불을 해 주는 게 낫습니다. 연 3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쿠팡에게 한 개인의 환불·반품 이슈는 사실 미미한 피해입니다. 환불 거부로 SNS 등에서 이슈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적은 비용으로 리스크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환불 거부'를 꺼내들어야 할 상황이 있죠.
블랙 컨슈머
최근 한 커뮤니티에서는 쿠팡 반품센터에서 일했던 직원이 올린 글이 화제가 됐습니다. 기업들이 왜 무료반품 서비스를 꺼리는 지 알 수 있다는 감상과 함께 본인이 겪은 반품 유형을 소개했는데요.
24개입 음료수 박스를 주문한 뒤 1~2개를 빼내고 반품을 하는 일, 옷걸이나 집게 등을 대량 구매한 뒤 1~2개를 빼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품센터에서 일일이 제품 갯수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거죠.설탕이나 밀가루, 쌀 등은 필요한 양 만큼만 사용한 뒤 포장이 터져 사용할 수 없다고 반품을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쿠팡 반품센터 직원이 오해한 걸까요. 쿠팡뿐만이 아닙니다. 이커머스, 대형마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명절이 지나면 먹고 남은 배나 사과를 반품하거나 먹고 나서 상했다며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름이 끝날 때쯤 무료반품 제한 기간인 30일에 맞춰 선풍기 반품이 대량으로 들어온다든지, 여러 권의 책을 구매한 뒤 순서대로 반품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벽돌 아이패드'겠죠. 지난 2020년 쿠팡의 선환불 제도를 이용해 아이패드와 노트북 등 고가 제품을 구매한 뒤 무게가 비슷한 벽돌을 집어넣어 환불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더 치밀하게는 노트북을 분해해 그래픽카드 등 고가 부품을 빼돌린 뒤 자신이 갖고 있던 저가 부품으로 교체하는 경우도 있었죠.
실제로 최근에 만난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어느 플랫폼이든 반품·환불 규정을 악용하는 소비자가 너무 많아 이를 직원들이 일일이 잡아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러 차례 사례가 반복돼 고의라고 판단된 경우엔 환불 등의 시스템 이용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쿠팡 잘못은 없나
쿠팡이 검수·확인 작업을 더 꼼꼼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소비자들을 자기 플랫폼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조건 환불'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이를 이용하면 블랙 컨슈머로 몰아가기만 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쿠팡의 부족한 검수 작업 때문에 피해를 보는 선량한 소비자도 나옵니다. 대용량 제품을 구매했는데 갯수가 부족할 경우 반품을 요청하면 내가 블랙 컨슈머로 몰리는 게 아닐까 우려하는 소비자도 많습니다.
편리한 환불은 적용하되, 수량이 모자라거나 개봉된 상품을 반품하는 등 악용 우려가 있을 경우 꼼꼼하게 조사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악용 사례를 조사하는 것보다 반품을 받아주는 게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묻지마 반품'을 허용하는 건 장기적으로 사회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겁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도둑이 아닌, 도둑맞은 사람에게 "그러게 물건 간수를 잘 하지 그랬냐"며 질책하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업이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정책을 악용하지 않는 도덕성일 겁니다.
역사 속 위인처럼 초인적인 도덕성을 발휘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나의 작은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자',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자'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