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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이커머스들이 사랑하는 'EBITDA'의 진실

  • 2025.03.01(토) 13:00

[주간유통]컬리·SSG닷컴·11번가의 'EBITDA 흑자'
업계에서 사실상 흑자 전환 지표로 본다는 주장
흑자 전환 장담 아냐…영업이익과 격차 큰 곳도

그래픽=비즈워치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우리 실적 좋아요

2월 말은 주요 상장사들이 지난해 실적을 정리하는 기간입니다. 한 발 앞서 실적을 공개했던 기업들도 이 시기 계열사와 세부 사업의 실적을 알립니다. 해당 기업에 투자 중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경쟁 기업, 이 산업에 관련된 사람들까지 이목이 집중됩니다.

지난해 이커머스 기업들의 실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티메프 사태라는 암초가 있기는 했지만 저마다 소기의 성과를 거뒀죠. 유통업계 사상 최초로 매출 40조원을 돌파한 쿠팡은 말할 것도 없고요. SSG닷컴과 11번가도 잇따라 손실폭을 크게 줄였다고 알렸습니다. 매출과 이익이 모두 줄어든 G마켓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중상' 이상의 성적표는 받아든 듯합니다.

그래픽=비즈워치

그런데 이커머스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보다 보면 수차례 반복되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에비타(EBITDA)'입니다. 분명 영업손실을 기록했는데, EBITDA 기준으로 보면 흑자를 냈다고 주장합니다. 한 곳만 이렇게 주장하면 모르겠는데, 주요 이커머스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EBITDA 흑자'를 외칩니다.

올해 처음으로 'EBITDA 흑자'를 냈다고 하는 SSG닷컴이 그렇구요. 아직 연말 실적이 나오진 않았지만 컬리 역시 지난해 'EBITDA 흑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11번가도 '오픈마켓 부문'에서 EBITDA 흑자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쿠팡도 2023년에 '분기 EBITDA 흑자'를 냈다고 했었죠?

흑자는 아니지만

EBITDA는 재무제표 용어인데요. '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의 앞 글자를 떼서 만든 말입니다. 단어를 그대로 풀어 쓰면 '이자비용(Interest)과 세금(Taxes), 감가상각비(Depreciation and Amortization)를 제하기 전(Before)의 순이익(Earnings)'이라는 의미입니다. 순이익에서 일부 비용을 빼기 전의 숫자이니 실제 기업이 낸 순이익보다 큰 금액이 나옵니다. 

기업들이 이 수치를 들고나오는 이유는 거의 비슷합니다. 재무제표 상으로는 영업손실이 나고 있지만 영업활동만 고려하면 흑자를 낼 수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EBITDA 흑자가 영업손실이 이익으로 반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이야기 합니다. 즉 '우리가 작년에 EBITDA 흑자가 났으니 올해나 내년 쯤에는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외치고 있는 겁니다.

이마트의 2024년 실적 리포트. SSG닷컴의 주요 지표로 EBITDA를 공시했다./사진=이마트 2024년 어닝 리포트

실제로 지금 'EBITDA 흑자'를 공개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긴 기간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곳들입니다. 한 번 볼까요. SSG닷컴은 지난해 -395억원이었던 EBITDA를 50억원 흑자로 돌려놨다는 걸 가장 중요한 지표로 앞세웠습니다. 11번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력 사업인 오픈마켓 부문에서 연간 EBITDA 흑자를 이뤄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아직 실적 공개 전인 컬리도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3분기 연속 EBITDA 흑자'를 헤드라인으로 뽑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영업손실 규모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만한 규모가 아닙니다. SSG닷컴의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는 727억원에 달합니다. 4분기에만 25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죠. 11번가의 영업손실 규모도 754억원에 달합니다. 그나마 컬리가 3분기까지 영업손실 44억원으로 흑자전환의 기대를 높였습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적자 기업들이 EBITDA를 지나치게 '만능 지표'로 사용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EBITDA 흑자가 영업이익 흑자를 의미하는 게 아님에도 마치 '곧 영업이익이 날' 증거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EBITDA 지표 개선을 내세우는 기업들은 컬리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기업들입니다. 현금흐름표 등 기업의 영업활동을 더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지표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EBITDA로만 실적 개선을 주장하는 셈입니다. 

실제로 EBITDA 흑자와 실제 영업이익 흐름이 맞물리지 않은 케이스는 많습니다. 지난 2020년 3월 티몬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EBITDA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티몬은 "일시적 비용 감소가 아닌,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된 흑자"라고 주장하며 연간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내놨습니다. 결과는 631억원 손실이었죠.

컬리는 2023년 12월 월간 EBITDA 흑자 전환에 성공한 뒤 지난해 1분기에 분기 흑자를 기록하며 수익성 개선에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2분기부터는 다시 'EBITDA 흑자'를 내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11번가도 2023년 5월부터 오픈마켓 부문에서 EBITDA 흑자를 내고 있지만 진짜 흑자 전환은 아직 요원합니다. SSG닷컴은 EBITDA와 영업이익 간 격차가 거의 800억원에 달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 중 EBITDA를 주요 지표로 보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기업에 유리한 EBITDA를 끌어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언급한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매출이 다소 줄었지만 영업손실 규모가 크게 줄어든 곳도 있고요. 매출을 늘리면서도 수익성 개선에 성공한 기업도 있습니다. 이들이 'EBITDA 흑자'를 이야기하며 미래의 영업이익 흑자를 약속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나 소비자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결국 기업은 자신에게 유리한 지표를 보여주게 마련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불황이 해소되고 이들의 실적이 실제로 개선돼 꿈에 그리던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는 거겠죠. 장담하는데, 그 날이 오면 아마 'EBITDA 흑자'를 찾는 기업은 단 하나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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