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이 다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혼인 건수가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며 긴 침체를 벗어난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비부부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데요. 치솟는 대관료와 식대 등 이른바 '웨딩플레이션(웨딩+인플레이션)'이 적정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평생 한 번뿐"이라는 수식어가 인질이 된 고물가 시대. 눈높이는 유지하되 지갑은 지켜야 하는 MZ세대의 고민이 '웨딩 소비의 양극화'라는 기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7년 만의 '웨딩 붐'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약 24만건으로 2018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2012년부터 11년 연속 감소했던 혼인 건수는 2023년 반등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코로나19로 미뤄졌던 숙제들이 몰린 데다, 30대 초반 인구가 유입되며 혼인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웨딩플레이션'이 현실화됐기 때문입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올해 2월 전국 평균 결혼 서비스 비용은 약 2139만원으로 전월 대비 2.3% 상승했습니다. 결혼 서비스 비용은 지역별 격차가 크게 나타나는데요. 서울 강남권의 결혼 비용은 평균 3466만원으로 전국 평균을 훌쩍 상회합니다.
가장 무서운 건 '식대'입니다. 서울 강남권 식대는 이제 평균 9만원대에 육박합니다. 기본 보증 인원이 250명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결혼식 하루에 밥값으로만 2250만원이 나가는 셈입니다. 여기에 생화 장식이나 본식 촬영, 드레스 도우미와 같은 필수 옵션을 더하면 체감 비용은 5000만원을 우습게 넘기게 되죠.
내년 3월 결혼을 앞둔 김 모 씨는 "불과 1년 전 결혼한 지인과 비교해 봐도 식대와 대관료 차이가 너무 커서 놀랐다"며 "해가 바뀌면 대관료, 식대는 물론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비용까지 오르는데 서비스 품질은 달라지는 게 없다. 웨딩업계는 재구매 고객이 없는 구조라 소위 '배짱 영업'을 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비부부들 사이에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팽배합니다. "식장은 남들 눈이 있으니 포기 못 해도, 몸에 걸치는 건 아끼자"는 주의입니다. 최근 호텔 웨딩홀 선호도가 오히려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인데요. 일반 예식장 비용이 호텔 수준으로 치솟자 차라리 비슷한 돈을 내고 이름값 있는 호텔을 택하는 '상향 평준화'가 일어난 겁니다.
실제로 서울 시내 한 5성급 호텔 관계자는 "호텔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호텔 대관료는 강남 일반 웨딩홀 수준이고 식대도 1만~3만 원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며 "서비스와 식사 품질을 생각하면 오히려 호텔이 더 가성비 있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아낄 수 있을 때 아끼자"
이른바 '선택과 집중' 전략의 주된 타깃은 '2부 드레스'와 '웨딩 스냅 촬영'입니다. 예식 공간에 예산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예비부부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패션 플랫폼과 해외 직구라는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수백만 원을 주고 대여하던 드레스 대신,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세레모니 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트렌드가 됐습니다.
지그재그, W컨셉, 29CM 등 패션 플랫폼은 이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지그재그의 경우 지난달 11~24일 '웨딩촬영 블랙드레스' 거래액이 전년 대비 무려 19배(1824%) 이상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니 웨딩드레스' 거래액도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웨딩 귀걸이'는 19배, '웨딩 구두'도 6배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W컨셉 역시 지난 3월 세레모니 웨어, 셀프 웨딩 등 관련 검색량이 전년 대비 20%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촬영 대신 셀프 웨딩 스냅 촬영을 진행하는 커플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는 셀프 웨딩드레스를 저렴하게 구매하고 웨딩 스냅을 찍는 노하우가 쏟아집니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서 판매하는 1만~8만원대 드레스도 인기입니다. "사진만 잘 나오면 된다"는 실용주의가 확산하면서 한국인들의 꼼꼼한 '내돈내산' 후기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결국 웨딩 시장은 중간 가격대가 사라지는 '모래시계형 구조'로 재편되는 분위기인데요. 필수 영역은 고급화되고 대체 가능한 영역은 저가화되는 소비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웨딩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한 예비부부들은 전체 예산을 줄이기보다 '쓸 곳과 줄일 곳'을 명확히 나누는 전략적 소비를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웨딩플레이션이 낳은 '3만원짜리 알리 드레스'는 단순한 가성비 트렌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결혼 문화를 상실해 가는 우리 웨딩 산업의 씁쓸한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소비 구조가 굳어질 경우 결혼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지면서 혼인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눈앞의 수익에만 매몰된 웨딩 산업이 스스로 시장의 붕괴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