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한 폭의 유화 같은 화면이 펼쳐진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방 안에 갈색 책상들이 반듯하게 정돈돼 있다. 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미국의 유명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옮겨 놓은 듯하다. 단정한 옷차림의 두 남녀가 창을 향해 앉아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태블릿을 내밀며 묻는다. "영어 좀 하죠? 이거 읽어봐요." 남자가 화면에 적힌 'SSG'라는 알파벳 세 글자를 바라보다 단 한마디를 내뱉는다. "쓱."
이 광고는 10년 전 전파를 탄 SSG닷컴의 '쓱=SSG '편입니다. 당시만 해도 이커머스 '후발주자'였던 SSG닷컴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광고인데요.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단 몇 마디 주고받을 뿐인 이 짧은 광고는 SSG닷컴을 단숨에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에스에스지' 대신
SSG닷컴은 2014년 신세계그룹이 신세계백화점몰과 이마트몰 등 흩어져 있던 온라인 채널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출범한 쇼핑몰입니다. 출범 당시엔 배우 이병헌과 류승룡, 한효주를 내세운 광고를 선보이기도 했죠.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SSG닷컴'이라는 이름은 좀처럼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이때 돌파구가 된 게 바로 '쓱'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영문 알파벳 SSG를 그대로 발음하면 쓱이 된다는 단순한 발견이었죠. '에스에스지닷컴'이라는 긴 이름 대신 '쓱닷컴'이라는 짧은 애칭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킨 겁니다.
이런 발상 자체는 자칫 가벼운 말장난으로 흘렀을 법했지만 극도로 절제된 형식과 정교한 미장센은 이 광고를 품격 있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15초짜리 화면 안에서 공유와 공효진이 주고받는 짧은 대화가 전부였고 배경 음악도 귀에 꽂히는 멜로디 대신 강렬한 리듬만으로 구성됐습니다.
반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와 아름다운 화면이 이를 받쳐주면서 광고 전체가 마치 움직이는 그림처럼 완성됐죠. 톱배우를 앞세운 고급스러운 연출이 B급 감성의 말장난을 오히려 세련되게 포장해낸 겁니다.
이 광고는 단숨에 큰 화제가 됐습니다. 유튜브 등에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였고 그해 광고 관련 시상식을 휩쓸었죠. 이런 인기를 입증한 건 '패러디'였습니다. 글로벌 뷰티 브랜드 MAC의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인기 코미디언 장도연과 유상무가 공유·공효진 역할을 맡아 MAC의 신제품 '셀피커버쿠션'의 애칭 SCC를 쓱이라고 흉내 내는 광고였죠.
또 선거관리위원회, 경찰청 등 공공기관들까지 줄지어 SSG닷컴 광고의 패러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일반인들도 SSG를 쓱이라고 읽는 것과 비슷한 언어유희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생산했습니다. SSG닷컴의 광고가 단순한 회사 홍보용 영상을 넘어 하나의 놀이가 된 셈입니다.
'쓱'이 자란다
첫 광고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 2016년 여름 SSG닷컴은 소비자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ㅅ·ㅅ·ㄱ' 초성으로 만들 수 있는 단어를 공모한 'Make your 쓱 CF' 캠페인이었습니다. 총 1만4000여 건의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그중 '선수군', '상실감', '싼거', '술생각', '세시간' 등 5개가 최종 선정돼 각각 15초짜리 광고로 제작됐습니다.
예를 들어 '세시간' 편에서는 세 시간 뒤 집들이 손님을 앞두고 급히 장을 봐야 하는 상황을 SSG닷컴 당일 배송과 연결 지었습니다. 소비자가 광고 소재를 직접 만들고 브랜드가 그것을 완성해 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쓱이라는 언어유희를 SSG닷컴만의 문법으로 굳혀 가는 과정이었죠.
2018년 'SSG어(語)' 광고 역시 이런 쓱만의 문법을 보여준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는 대사의 모든 자음을 'ㄱ'이나 'ㅅ'으로 치환한 것이 특징인데요. SSG닷컴 광고 특유의 미장센과 공유·공효진의 뻔뻔한 연기는 그대로였지만 귀에 들어오는 대사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였습니다. 예를 들면 '헐 대박 소름'이 '석 새각 소긋'으로, '믿음이 확 가네'는 '싯슷기 솩 가세'로 바뀌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눈과 귀가 따로 노는 묘한 어긋남이 오히려 시선을 잡아끌었죠.
이런 쓱 광고는 점차 SSG닷컴의 서비스 자체를 브랜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2019년 '쓱세권' 캠페인이 대표적입니다. 역세권·슬세권(슬리퍼를 신고 걸어갈 수 있는 생활권)처럼 '쓱배송' 권역 안에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활권이 된다는 개념을 '쓱세권'이라는 신조어로 압축했습니다. 2020년 '쓱케일' 캠페인은 '쓱'과 '스케일'을 합친 신조어로 SSG닷컴이 갖춘 상품 규모와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새 얼굴은 클로버
이렇게 오랜 시간 SSG닷컴의 얼굴을 대표해 온 건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었습니다. 하지만 SSG닷컴과 이들의 인연도 2023년 초 끝나게 되는데요. 이때 SSG닷컴은 '쓱스럽게 안녕'이라는 헌정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영상에는 SSG 이니셜을 한 글자씩 따 'See you again, Say, Goodbye'라는 문구도 새겨졌습니다. 이별을 고하는 순간에도 쓱이라는 언어유희를 놓지 않은 겁니다.
이후 SSG닷컴 광고는 빅모델 없이 자사 강점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수도권 주요 지하철 역사에서 만화 캐릭터 '영심이'와 '경태'를 내세워 이마트 신선식품 경쟁력을 알리는 대규모 옥외광고를 전개하는 식이었는데요. 스타의 얼굴 대신 상품과 혜택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었습니다.
SSG닷컴은 최근 사람을 대신해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SSG닷컴이 새 유료 멤버십 '쓱세븐클럽'을 론칭하며 선보인 캐릭터 '쓱칠이'인데요. 7잎 클로버를 사람처럼 형상화한 이 캐릭터의 성격은 단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복잡한 건 질색'이라는 점입니다.
쓱칠이는 광고에서 혜택에 붙어 있는 각종 조건을 딜리트 키로 삭제하거나 포크레인으로 갈아엎으며 '얼마를 쓰든 평등하게 7% 적립'이라고 외치는데요. 장보기 결제액의 7%를 고정적으로 적립해 주는 쓱세븐클럽의 '심플함'을 내세우는 역할입니다.
이런 캐릭터 광고로의 전환은 SSG닷컴 브랜드 전략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공유·공효진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로 SSG닷컴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쓱칠이는 멤버십의 혜택과 정체성을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죠.
쓱이라는 단어는 이제 SSG닷컴을 넘어 신세계그룹 전체의 언어가 됐습니다. 쓱은 자연스럽게 신세계그룹의 애칭으로 자리매김했고요.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프로야구단 SSG랜더스도 팬들 사이에서 쓱이라고 불립니다. SSG랜더스의 홈구장에는 랜더스 팬들의 응원석 '으쓱이존'까지 생겼습니다. 15초짜리 광고에서 태어난 한 글자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