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엔 금융권의 대규모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금융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꼽히는데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 완화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금융 비즈니스 모델이 잇달아 선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워치는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주요 격전지를 선정해 새해 금융권 지형 변화를 가늠해 보려한다. [편집자]
올해 주요 시중은행 은행장들의 첫 메시지엔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진 '디지털 전환'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전환'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의 진화 즉 '뱅킹의 플랫폼화'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현재 추구하는 모바일뱅킹의 지향점은 '생활금융 플랫폼'이다. 다양한 금융서비스는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더해 말 그대로 일상생활의 필수앱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엔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니버설 뱅크'이 목표였다면 이젠 일상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새로운 경쟁자로 떠올랐다.
◇ 은행의 '플랫폼화'가 의미하는 것
은행들이 새로이 추구하는 플랫폼을 이해하려면 플랫폼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애초 플랫폼은 컴퓨터시스템 용어로 다양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소화할 수 있는 하나의 운영체제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PC에서 사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와 애플의 맥에서 사용하는 '맥OS'가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하나의 기업이 업종을 넘나드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컴퓨터시스템 용어인 플랫폼이 새로운 비즈니스의 지향점을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가 된 셈이다. 가령 윈도즈 플랫폼에서 다양한 인터넷 브라우저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네이버에선 검색은 물론 쇼핑과 엔터테이먼트 콘텐츠 등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그러면서 네이버는 대표적인 '플랫폼 사업자'로 자리매김했다.
시중은행들이 추구하는 지향점 역시 네이버와 일맥상통한다. 은행들이 고객과 만나는 최대 접점이 된 모바일뱅킹을 통해 금융은 물론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얘기다.
◇ 법적 기반이 마련된다
핵심은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이 속속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업을 영위하기 위해 은행 라이선스를 획득했다면 은행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만 업무를 할 수 있다. 법안에 명시된 내용이 아니라면 다른 업무는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이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진출하자 위기감을 느낀 은행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달라고 꾸준히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을 비롯한 전통적인 금융권과 빅테크 기업 간 협의 과정에서 은행들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구체적으로 지난달 10일 제5차 디지털금융협의회에서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이 음식주문이나 쇼핑 등 플랫폼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본연의 업무는 물론 다른 업무(부수업무)도 늘려주겠다는 얘기다.
일단 신한은행이 스타트를 끊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신한은행 앱에 음식 주문중개 플랫폼 탑재하는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 신한은행 '쏠'에서 음식배달도 할 수 있게 된다. 신한은행은 올해 7월 중 해당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 플랫폼화의 최종 목표는 '데이터'
시중은행들이 '플랫폼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새로운 수익원 창출도 있지만 본연의 금융서비스를 더 고도화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이 더 강하다.
은행들이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취급할 수 있게 되면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면서 고객 개개인의 자산현황과 소비 습관 등은 물론 돈이 오가는 흐름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은행 디지털전략부서 관계자는 "은행이 플랫폼화를 지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데이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면 은행 본연의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은행 디지털부서 관계자 역시 "금융은 이제 고객 정보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라며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으면 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금융 본연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가 최근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손잡고 출시한 '미래에셋캐피탈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대출'은 은행이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기사 네이버파이낸셜, 온라인 사업자 신용대출 출시
이 서비스를 선보인 네이버파이낸셜은 대출을 위한 신용평가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마련했다. 이 시스템은 시중은행들이 보던 신용등급과 기존 대출금액 등 금융정보 외 대출 신청자의 매출 흐름, 고객 리뷰, 반품률 등 각종 데이터도 활용한다.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면서 온라인 소상공인에 대한 데이터를 충분히 쌓아온 덕분이다.
◇ 생활금융 플랫폼 경쟁 시작…제휴사를 확보하라
금융위원회가 신한은행에 배달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제 특례를 적용했지만 시중은행들이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은행법 개정이 필수다.
문제는 은행법 개정만 기다릴 순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추구하는 '생활금융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첫걸음을 떼려면 다양한 제휴사 확보가 관건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직접할 수 없다면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를 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다양한 생활 플랫폼과 제휴해 고객들이 머물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금은 생활금융 플랫폼에 걸맞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면서 "은행들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은행법 개정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생활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제휴사와 협업이 경쟁의 서막이 될 것"이라며 "어떤 제휴사를 확보하느냐가 경쟁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