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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메타버스 은행 지점을 가다

  • 2022.02.18(금) 07:20

KB국민은행, '로블록스'에 지점 시범 오픈
대출 체험부터 실생활 카드 발급까지
MZ 익숙한 메타버스…고객접점 확대할까
메타버스 홍수…금융사, 결국 선택과 집중 기로에

통상 르포기사를 쓸때면 기자는 최대한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외출준비를 한다. 현장에서 기자가 보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내 복장부터 편해야 한다는 생각부터다. 하지만 이번 르포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기자는 맨발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번에 체험할 공간은 가상의 공간 '메타버스' 세계여서다.

지난해부터 메타버스는 전 산업권 최대의 화두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대면보다는 비대면 방식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현실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가상현실' 세계에서의 소통방식이 인기를 끌면서다. 누구나 메타버스 산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은행권 역시 마찬가지다.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메타버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임원 회의때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진행하거나 기자간담회를 메타버스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나아가 은행권은 가상현실 속에 은행점포를 만들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KB국민은행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다는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실험에 나섰다.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을 시범 운영한 것이다.

MZ세대, 이미 익숙한 메타버스

메타버스란 현실세계와 같은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현실 세상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각자 메타버스 플랫폼에 만들어진 아바타에 자신을 투영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메타버스 열풍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대면접촉이 어려워지자 가상현실에서의 만남이 이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다. 

사실 가상현실은 MZ세대에게는 익숙한 환경이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만 생소할 뿐이다. 10대와 20대 여가시간을 PC온라인게임으로 보냈다면 이미 가상현실 세계에 대한 경험은 충분히 쌓여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메타버스는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운영하는 MMORPG(다중역할수행롤플레잉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같은 게임과 같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 바 있다. 아울러 이번에 KB국민은행이 시범지점을 오픈한 '로블록스' 역시 모태는 게임이다. 

KB국민은행이 로블록스에 지점을 시범 오픈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메타버스는 이제 새로운 생활환경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게다가 핵심고객층이 될 MZ세대에게도 익숙하다. 새로운 디지털 금융환경 속에서 고객 선점을 위한 시도에 나선 셈이다.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 전경. /사진=이경남 기자

게임 속 에서도 대출 받는 내 인생

KB국민은행은 로블록스에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에 부동산 매물과 이 부동산 매물을 구입하기 위해 자금을 내어주는 KB국민은행 지점을 구현했다.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에 배치된 주택담보대출 NPC. /사진=이경남 기자 lkn@

구현된 방식은 간단하다. 원하는 부동산 매물을 고르고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에 방문해 주택자금 매물을 위한 대출을 받으면 된다. 물론 이자는 따로 붙는다. 게임내 구석구석 마련된 코인을 얻으면 신용등급이 내려가 대출이자가 감면되고 궁극적으로는 대출을 모두 상환해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로블록스 마을 내에 있는 'KBC'코인을 모으면 신용점수가 내려가고 내가 가진 자산이 올라가게 된다. 이를 위해 열심히 마을을 산책해야 한다. /사진=이경남 기자 lkn@

이 내용만 보면 사실 별게 없다. 게임내 주택 구매를 위한 재화를 벌기 위해 노력한 경험은 사실 많은 MZ세대들이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EA의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즈'시리즈에서는 게임 시작을 위한 주택을 구매한다. 그리고 이 주택자금을 갚기 위해 취직후 매일 출근해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 게임의 시작이다. 

/삽화=김용민 기자 kym5380@

2020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일본 닌텐도 사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역시 비슷하다. 게임을 시작하면 나의 거주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거주공간을 위해 '너굴'이라는 게임 속 NPC가 돈을 빌려준다. 

게임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 빚을 갚지 못하면 집을 확장할 수도, 나의 아바타가 살아야 하는 '섬'의 발전을 꿈꾸기도 힘들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돈을 빌려주는 '너굴'이라는 NPC에게 악덕 사채업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우습게도 금융권 종사자들은 너굴이 이자를 받지도, 만기도 설정하지 않고 주택담보대출을 빌려주는 대인배라고 칭했다)

KB국민은행은 왜 이런 시도를 했을까

로블록스내 KB국민은행 지점을 방문한 이후 첫 느낌은 KB국민은행이 로블록스에 메타버스 지점을 시범 오픈한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게임내에서 은행업무를 체험하는데 그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임내에서 부동산을 구매하고 재화를 모으는데 굳이 실제 금융회사가 뛰어들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한가지 잊고 있는것이 있었다. 최근의 메타버스는 과거 온라인내에 한정됐던 나의 가상생활 경험이 나의 실생활로 연결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MZ세대가 가상현실이라는 환경에 얼마나 익숙하며 편리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상기했다.

가상현실에 익숙한 MZ세대, 그리고 현실과 연결되는 가상현실. 바로 이것이 최근 메타버스 열풍이 불고있는 이유라는 점을 느낀 순간이었다.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에서 금융상품 가입 상담을 원할 경우 휴대전화로 링크를 받아 직접 상담까지 연결이 가능하다.이러한 기능은 카드발급까지 가능하다. /사진=이경남 기자

실제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에 배치된 은행원들에게 말을 걸면 카드와 상품 가입을 위한 직원과의 화상상담을 연결시켜 준다. 일단 현재까지 구현된 것은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휴대전화로 KB국민카드 발급 절차 혹은 화상상담을 위한 링크를 보내주는 방식이었지만 실생활로 직접 연결된다는 점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재는 다양한 법과 기술적 한계때문에 실제 금융생활과 연결해줄 수 있는 가상현실속 은행지점의 역할은 분명 한계가 있다.

다만 규제 완화, 기술적 보완 해결이 가능하다면 더 많은 고객과 만날 수 있는 고객 접점이 될 수 있음이 분명했다. 특히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해외지점의 역할까지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상현실속 나와 실제 나의 생활의 연결. 최근 금융권이 메타버스에 집중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BC카드와 스마일게이트가 손잡고 내놓은 PLCC카드. 출시 이틀만에 1만장 발급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사진=스마일게이트 제공

최근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는 자사의 온라인 MMORPG게임 '로스트 아크'와 BC카드와 협업을 맺고 PLCC카드를 내놨다고 한다. 그리고 이 카드를 소개하는 일종의 팝업 스토어를 게임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마트에서나 보던 카드중개인이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속에 등장한 셈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이틀만에 1만장이 넘게 신규 발급됐다고 한다. 물론 카드 자체의 혜택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가상현실을 향한 금융회사들의 도전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메타버스내 금융사 성공의 키는

이번에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을 방문하고 금융권의 메타버스 도전기를 취재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금융권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생태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키워드를 찾을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우리가 현재 말하는 '메타버스'는 사실 하나의 세상이 아니다. 플랫폼을 제공하는 제공자 수 만큼 수많은 가상현실이 탄생한다. 당장 떠오르는 '메타버스'가 무엇이냐는 수많은 관계자들의 질문은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 로블록스를 비롯해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등 다양한 플랫폼이 메타버스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메타버스 환경 속에서 은행들이 대 고객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는 각 플랫폼마다 요구하는 요소들을 따로따로 구현해야 한다. 메타버스 플랫폼마다 디자인부터 기본이 되는 물리엔진까지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회사들은 선택과 집중에 갈림길에 서게 될 순간이 올 것이다. 어떤 메타버스 플랫폼에 정착할 것인가, 모든 메타버스 내에서 고객을 만날 수 있게 할 것인가 등의 문제다. 비용과 인력의 문제와 연결된다. 자연스럽게 이용자 수가 많은 플랫폼과 협업하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경쟁으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는 메타버스 플랫폼의 한계다. 

사실 은행업무의 비대면 화로 은행 애플리케이션들은 상당한 편리함을 갖췄다. 계좌조회, 송금부터 금융투자상품가입, 대출까지 안되는 것이 없는 시대다. 메타버스 플랫폼에 접속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모바일에서 제공되는 플랫폼도 있지만 현재 대부분 메타버스 플랫폼은 PC 등에서 훨씬 편하게 이용이 가능했다.)이 생략되는데다가 더 많은 업무를 제공한다.

KB국민은행 로블록스 지점 내 배치된 금융시장현황판. 아직은 실시간 반영되지 않지만 실시간 반영기술이 접목되면 가상현실 플랫폼 안에서도 언제든지 금융시장 시황을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코스피 1800은 다소 무섭다)/사진=이경남 기자

다만 디지털 환경은 매운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동시에 금융업도 이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중이다. 로블록스내 KB국민은행 지점의 시범오픈이 시사하는 것은 금융권도 변화의 속도에 발을 맞추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아직은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 속 나와 현실의 나의 생활을 온전히 일치시키기는 힘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상현실속 나와 현실의 나의 연결고리가 더욱 두터워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가상현실이 현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금융회사들이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것인지 기대되는 지점 방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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