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올해 남은 기간 성장의 모멘텀을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핵심 이익인 이자이익이 발생하는 대출 시장의 경우 가계와 기업을 막론하고 '빚'에 기대어 산다는 지적에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비이자 이익의 경우 올해 초 은행권을 강타한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손실 사태 영향에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올해 남은 기간동안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에 대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모양새다.
빨간불 가계대출, 노란불 기업대출
최근 몇 년 사이 고금리가 이어져 오면서 은행들의 가계대출 수요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은행의 핵심 수익 자산 중 하나였다. 올해 들어서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데다가, 4분기께에는 금리인하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라 가계대출 자산확대를 통한 수익성 확보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다만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너무 가파른만큼 은행들이 조절에 나서줄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했고 이 때문에 은행들도 가계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763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연초 세웠던 계획치인 760조7000억원을 넘어선 수준이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8월이면 계획에 비해 60%~80% 수준으로 증가하는게 적절한데 이미 150%가 늘었다면 두 배 이상을 넘어선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최근 가계대출 상승세를 이끈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 한도, 대상 차주(유주택자 등), 만기 등을 연이어 조정한 바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해 대출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갈 경우에는 신용대출도 보다 소극적으로 취급할 가능성이 높다. ▷관련기사 : 은행 대출 뒤죽박죽?…주담대 조이고 신용대출은 풀리나 (9월 2일)
은행 관계자는 "당장은 주택담보대출로 시작했지만 연내 금리 인하 등으로 수요가 여전해 신용대출 등으로 이동한다면 신용대출의 한도 축소 등도 검토할 만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계대출을 축소하는 대신 기업대출을 늘려 대출자산의 성장성을 이어나가기도 쉽지 않다. 안전한 기업대출의 경우 수요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수요가 여전한 소상공인 대출의 경우 리스크가 여전히 높아서다.
한 은행 기업여신부서 관계자는 "일반 법인에 대한 대출은 고금리, 고물가,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이어져온 자금수요를 대부분 소화해 은행끼리 땅따먹기를 하듯 뺏고 뺏기는 상황이지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자영업자 대출은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사실상 보증기관이 얼마나 보증을 서주느냐에 따라 취급액이 달라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비이자 이익 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워
대출자산 성장세가 둔화할 경우 수익성 보전을 위해 금융상품 판매 등을 통해 비이자 이익을 끌어올려야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 초 있었던 홍콩 ELS 손실 사태의 영향으로 금융상품을 은행에서 가입하려는 수요가 줄어든 데다가 은행 내부에서도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아서다.
한 은행 영업점장은 "과거에는 은행 영업점 방문 고객들에게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가입을 권유했지만 최근에는 환전 관련 트래블 카드 등의 발급 정도만 권유하고 있다"라며 "DLF(파생결합증권) 사태, 라임사태에 이어 홍콩ELS 손실사태 등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우려가 커져 핵심경영성과지표(KPI)도 이에 맞추 손봤기 때문에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 홍콩ELS 사태 여진…은행 영업전략 수정할까 (2023년 12월 11일)
그나마 수수료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송금, 환전 등의 서비스에서도 '무료'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영향도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빅테크 등이 그간 은행이 점유하고 있던 금융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련 수수료 무료 정책을 연이어 펼치기 시작했고 은행 역시 이를 거스를 수 없어 관련 수익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 빅테크 등의 등장 이전에는 오히려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은행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나오기도 했었다"라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이러한 말을 하면 오히려 역적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만 버티면 될까
은행권은 일단 올해 남은 기간을 '보릿고개'로 넘기고 나면 내년부터는 상황이 좀 더 나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내년에는 대출 총량 관리 기준이 '리셋' 되기 때문에 대출 영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더해 기준금리 인하 시기 역시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어 대출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다.
일부 은행의 경우 비이자 이익 증대와 불완전 판매를 해소할 수 있는 비대면 방식 중심으로 대고객 접근방식을 개선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내년에는 이자이익과 비이자이익 고른 성장을 바탕으로 은행의 수익성이 다시 기지개 켤 것이란 관측도 한다.
마냥 장밋빛 미래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내년이 된다고 해서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기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거니와 기업들의 상황이 나아져 자금을 적극적으로 융통하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에서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간의 은행업을 둘러싼 환경을 보면 상반기에는 체력을 다졌다가 하반기에는 이를 바탕으로 연간 수익성을 가져가는 것이 일반화 한 것 같다"라며 "상반기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하반기에는 올해와 같은 관리의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도 가계대출 문제를 어찌 할 지에 대해서는 상황을 봐가면서 재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