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을 둘러싼 반발이 국내 제약사를 넘어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법인 노조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내달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최종 의결을 앞두고, 그간 국내 제약사 중심의 문제로 인식됐던 약가 개편 논의에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제약사 노조까지 가세해 정부를 향한 압박 수위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외국계 제약사 노조가 다수 소속된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민주제약노총)은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에 공식 반대 입장을 밝히고 집단행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제약노총은 이날 오후 2시 건정심 회의가 열리는 서울 국제전자센터 앞에서 피켓 시위를 열고, 약가 인하가 제약산업 전반과 고용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공개적으로 제기할 계획이다.
민주제약노총은 한국노총 산하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화학노련)에 소속된 산별노조로, 앨러간·다케다·먼디파마·애브비 등 외국계 제약사 영업조직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국내 제약사 소속은 코오롱제약이 유일하다. 이 같은 조직 구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제약노총이 대응 전면에 나선 것은 약가제도 개편 논의가 더 이상 국내 제약사의 이해관계에 국한된 사안이 아님을 보여준다.
민주제약노총은 지난 26일에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산업 전반의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 간 면담을 주선하며, 제약업계와 노동계의 공동 대응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제바협·화학노련서 한노총·외자사로 대응 확산
그동안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한 대응은 국내 제약사들을 대표하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제약사 노동조합원들로 구성된 화학노련 의약화장품 분과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협회와 화학노련 의약화장품 분과는 지난해부터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개편안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지만, 보건복지부는 기존 평균 53% 수준이던 약가 인하율을 40%대로 조정하는 방안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도적·정책적 대응에 주력해왔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약가제도 개편안이 국민보건과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했으며, 이를 토대로 최근 국민의힘과 함께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달에는 제약기업 최고경영자(CEO) 설문조사를 실시해 약가 인하가 기업 경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협회는 이 조사에서 매출 감소와 함께 연구개발(R&D) 투자 여력 위축, 필수의약품 생산 중단, 인력 감축 가능성 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건정심 의결 시점이 2월 말로 다가오면서 약가제도 개편안은 더 이상 국내 제네릭 중심의 업계 이슈에 머물지 않고, 제약산업 전반과 노동계의 생존 문제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협회는 정책토론회 이후 한국노총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약가 인하가 제약업계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노동계의 대응도 점차 조직화되고 있다. 화학노련을 중심으로 한 제약노조는 약가 인하 개편안이 산업 전반과 고용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기 위한 공청회를 조만간 개최하고, 이를 통해 정부에 정책 재검토를 공식 요구할 방침이다.
노사정 협의체 제안…복지위·노동자 대변 의원 설득 본격화
앞서 화학노련 오상준 경기남부지역본부 의장과 의약·화장품분과 이장훈 의장은 지난 22일 향남제약단지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선 비상대책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와 제약업계, 노동계가 함께 약가제도 방향을 논의하는 '노·사·정 약가정책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특히 의약·화장품분과는 국회와의 접촉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장훈 의장은 비즈워치와의 통화에서 "보건복지부 소관 보건복지위원회 및 노동자 대변에 힘써온 국회의원들을 만나 약가제도 개편이 현장 노동자와 산업 기반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고 설득에 나설 것"이라며 "2월 초 협회와 논의해 대응 수위를 조정하되, 정부의 조정 여지가 있다면 노사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대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글로벌 제약사를 중심으로 한 민주제약노총까지 행동에 나서면서 약가제도 개편 논의는 제네릭 중심 구조를 넘어 제약산업 전반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제약노총 박기일 위원장은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당시 국민 부담이 오히려 늘었다는 분석이 있었고, 당시 많은 제약사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면서 "단순히 약가만 낮춘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노조 소속 국내 제약사는 코오롱제약이 유일하지만 산업 전체가 연결돼 있는 만큼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번 행동은 시작에 불과하며, 다음 달부터는 더 많은 인원이 투쟁에 참여하고 협회와 화학노련 의약·화장품분과도 공동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던 제약업계와 노동단체가 건정심 의결을 코앞에 두고 전면 대응에 나서면서, 약가제도 개편을 둘러싼 정부와 산업계·노동계 간 긴장 관계는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