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 빅3가 최악의 실적 참사를 겪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상반기 손실액만 해도 4조5000억원 규모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지난해 3조2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조선 빅3가 해양 플트 부실로 지난 1년 반동안 입은 손실액만 총 8조원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조선 빅3는 왜 그동안 이같은 부실을 털어내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두고 업계에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알고 있었지만 묻어뒀다는 은폐 의혹부터 해양 플랜트의 특성상 부실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워 손실을 털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의견까지 다양하다.
◇ 피해갈 수 없는 은폐 의혹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분기에만 3조원 넘는 손실을 실적에 반영했다. 당초 시장의 예상치인 2조원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였다. 이는 대우조선해양이 생각보다 많은 부실을 떠안고 있었다는 의미다. 큰 암덩어리를 몸속에 지니고 있었고 이만한 규모면 사전 인지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작년말 기준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미청구공사가 7조원에 육박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청구공사는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공사대금이다. 매출채권과 마찬가지로 회계상 자산으로 분류된다. 미청구공사는 매출채권보다 떼일 가능성이 높고 회수 기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는다. 여러모로 위험 자산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런 부실을 예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보고 있다. 미청구공사가 증가하면 자산이 늘어난다. 외견상으로는 좋은 시그널이다. 하지만 미청구공사 증가는 악성 종양으로 전체를 병들게 하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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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이 대규모 부실을 은폐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3조원이 넘는 규모의 부실을 떠안고 있었던 데다 작년말 기준 미청구공사 규모가 7조원에 육박했음에도 이를 처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
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재무라인에서 이런 부실을 몰랐을 리 없다"며 "다만, 생각보다 부실 규모가 컸고 마침 대우조선해양 내부에 여러 사정이 있었던 만큼 묻어뒀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내부의 사정은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작년 말 있었던 고재호 전 사장 연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고 전 사장 재임 시절 매분기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과 달리 꾸준한 실적으로 주목받았다. 시장에서도 대우조선해양을 가장 경쟁력있는 조선업체로 분류했다. 작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 부실로 대규모 손실을 입을 당시에도 대우조선해양 만큼은 승승장구했다.
업계는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작년은 고 전 사장의 임기 마지막 해였다.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는 고 전 사장이 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봤다. 고 전 사장의 연임을 위해서는 실적이 중요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매 분기 수익을 냈다. 이 때문에 작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부실을 털기 시작할 때 대우조선해양은 이들과 달리 부실을 덮어뒀을 것이라는 것이다.
◇ 도덕적 해이에 회계·감사 부실 지적도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상식적으로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3사가 해양 쪽에서 비슷한 포션이었는데 대우조선해양만 적자요인이 없다는 점에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공식적으로 해양부문의 부실을 스스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는 정 사장이 과거 고 전 사장 시절의 대우조선해양과 선을 긋겠다는 선언이었다.
정 사장은 또 "실사를 통해 대우조선해양도 해양 쪽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파악했고 이는 2분기 실적에 반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확한 손실 규모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해양부문의 손실이 상당할 것이라는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업계와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규모가 최소 2조원 이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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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은폐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도덕적 해이는 물론 회계·감사 기능의 마비 등 대우조선해양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비난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부실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공사손실충당금을 쌓고도 큰 손실을 입은 삼성중공업에 대해서도 회계·감사 부문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정 사장의 발언은 대우조선해양이 부실을 은폐해왔던 것이 아니냐는 업계의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일 업계의 예상대로 대우조선해양이 그동안 부실을 숨겨왔다면 이는 곧 '도덕적 해이'와도 연결된다. 기업이 부실을 숨기고 실적을 부풀렸다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최근 시장에서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실망스런 시선을 보내는 것도 단순히 대규모 손실 때문만은 아니다. 부실을 숨기고 시장과 주주를 속였다는 점에 대한 실망감도 담겨있다.
◇ 정확한 예측 시스템 갖춰야
해양플랜트는 통상적으로 공사 기간이 2~4년가량 걸린다. 규모도 큰 데다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이 많다. 발주처의 설계 변경 요구도 잦다. 세밀한 공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공사가 지연되고 설계가 변경되면서 자재와 인력 투입 계획이 수시로 변한다. 이것이 조선 빅3 해양플랜트 부실의 원인이다.
업계에서는 해양플랜트의 이런 특성상 부실의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한다. 공사가 얼마나 지연될지, 설계 변경에 따라 다시 투입돼야하는 자재와 부품 가격의 변화가 심해 추가부담이 얼마나 될지가 상선 건조 때보다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국내 조선 빅3가 이런 부실을 정확히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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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에서는 이번 조선업체들이 대규모 실적 참사를 계기로 해양플랜트 부문의 손실에 대한 정확한 예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현재 조선 빅3가 처해있는 상황상 또 다시 대규모 부실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